연중 33주일. 세계 가난한 이의 날.

2022. 11. 12. 오전 9: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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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33주일. 세계 가난한 이의 날. 말라 3,19-20; 2테살3,7-12; 루카 21,5-19

 오늘 말씀들은 전례력으로 연말이기에 좀 불편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1독서는 다가오는 그날이 그들을 불살라 버리리라. 그러나 나의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움의 태양이 날개에 치유를 싣고 떠오르리라 라며 엄청난 재난이 다가오겠지만 주님을 따라사는 선택된 이들은 살아남음을 말하고 있고요. 복음은 성전의 아름다움은 거론하는 이들에게 초를 치듯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라는 말씀을 하시지만, 혼란이 생길 때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주시겠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며 당신과 함께라면 용기를 가지고 맞서자 하십니다. 2독서는 평소의 삶을 잘 관리하며 묵묵히 일하며 자기 양식을 벌어먹자 며 꾸준한 성실성을 말씀합니다. 여기서 잘 봐야 할 점은, 종말의 관점은 언뜻 보기에 두렵고 피하고 싶지만, 실제로는 주님과 함께라면 두려울 것이 없음을 알려주십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들의 실제 모습은 어떠할까요?

 솔직히 우리의 모습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싶어합니다.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그게 편하기 때문이지요. 불편한 것 안 만나고 싶고요. 어려운 것 피하고 싶습니다. 골치 아픈 거 원하는 사람 별로 없습니다. 이 신앙에도 그런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종말신앙입니다. 종말하니까 무슨 교회 같지 않는 교회에서 말하는, 그런 종류가 생각되실지 모르지만, 분명 가톨릭은 예전부터 말해왔습니다. 지금 사는 이곳에서 모든 것을 누리자는 차원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죠. 그것은 이미 여러분이 세례받을 때부터 이야기 되어왔습니다.

 세례 때 물을 붓지요. 물은 2가지 의미를 가집니다. 하나는 새로운 삶을 갈구하는 씻음과 정화, 그리고 또 하나는 예전의 삶을 죽이는 차원입니다. 살아왔던 옛 삶과 작별하고, 이별하고, 종말을 고하면서 새로움을 입는 차원이었습니다. 그래야 주님이 말씀하신 내용이 잘 흡수되며 내 생활에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은 그냥 머리에 물 붓는구나~’ 라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러면 결국 어떻게 됩니까? 예전의 삶을 계속 끌어안으면서  새로움을 얻으려 하니 당연히 내 안에서 소화가 안됩니다. 예전 삶의 작동법과 주님을 통해 살아야 할 삶이 충돌되지요. 뭘 하긴 하는데, 쉽지가 않습니다.

 오늘은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이랍니다. 가난한 사람을 돕자는 건 누구나 하는 말입니다. 여기서 이런 질문을 해봅니다. 이 시대에서 누가 가난한 사람입니까?’ 예전에는 그 사람이 입는 옷을 보면 대충 알았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습니다. 값싼 옷도 품질이 좋아져서 언뜻 보면 티가 나지 않습니다. 게다가 사람들은 자신의 가난을 감추 싶어합니다. 이젠 외면만 보고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럼 요사이 가난한 이들은 누구일까요? 관심에서 멀어진 사람, 잊혀진 사람, 잊히길 강요받는 이들이 아니겠습니까? 왜 그들은 그런 취급을 받게 되었을까요? 사건과 참사는 벌어졌지만 애써 그것을 등지고 외면하고 면피하는 이들이 있는 이상, 피해자는 계속 생겨날 뿐입니다. 게다가 가난한 이들은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서도 발견됩니다. 가깝다는 이유로, 같이 살고 있다는 이유로, 함부로 대하고, 서로 막말을 하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가 왜 발생할까요? 나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를 우선시하는 행위는 동물적인 본능입니다. 물론 우린 다들 본능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울러 이성도 있습니다. 이성은 본능을 거스르고, 타이르고, 조절할 수 있지요. 하지만 요사이 여러 사태를 기분대로, 성격대로, 욕심대로 하다가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피하는 데 급급해합니다. 그러나 거짓에는 유통기한이 있습니다. 결국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여기에 신앙인은 결국 드러날 것을 덮어놓는 이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드러날 것을 잘 받아들이고, 맞설 때 참다운 해결방식을 찾을 수 있습니다.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고 개방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살릴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앞서 들은 말씀들처럼 비록 현실이 불편하고, 다가올 것들이 내 맘 같지 않더라도, 주님을 찾으며 그분의 방식으로 이겨나간다면, 우린 그 시간이 더 이상 일반사람들처럼 두렵지 않음을 이미 약속받았는데요.

 사랑하는 인헌동 본당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주님의 약속을 믿습니까? 그분으로 인해 예전 삶과 종말을 고하고 새로운 삶으로 옮아가길 희망하십니까? 바로 이 두 가지. 주님을 참되게 믿고, 나를 거기에 맞춰 조절하면서 더 이상 두려움 없는 삶을 사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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