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많은 이들이 보여지는 것에 치중합니다. 특히 젊은이들에게서 그런 현상이 많이 보입니다. 일명 플렉스(flex)한 삶을 보여주는 건데요. 뜻을 확장해 풀자면 ‘자랑하다’ 뜻입니다. 플렉스란 단어의 기원은, 춤과 랩을 하는 힙합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실제로 90년대 미국 힙합하는 가수들이 성공을 하고 부를 얻자, 갖고 있던 재산을 자랑하면서, 가진 귀중품이나 돈을 깔고 눕는 사진을 찍어 올렸고요. 가난한 할렘가의 흑인이 갑자기 큰 돈을 벌었으니 주체를 못하는 것이었죠. 게다가 존재감을 뽐내는 것을 자신의 가치를 드러낸다고 여겼습니다. 이게 우리에게도 수입된 건데요. 지금의 젊은 세대는 부모들보다 경제적으로 가난한 첫 세대가 되었습니다. 어차피 돈을 많이 벌기 힘들고요. 집을 가질 수도 없습니다. 드러내고픈 본능은 있지만 대신 드러낼 것이 없으니 어떻합니까? 그렇지요. 없는 것을 있게끔 만듭니다. 괜히 살지도 않는 강남에서 사진찍어 SNS에 올리면서 집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이고요. 비싼 명품을 빌리거나 무리해 구입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하지요. ‘플렉스 해버렸지 뭐야?’ 이는 이중적인 의미입니다. ‘플렉스 했다’ 는건 자랑하겠다는 뜻이고, ‘뭐야?’ 막상 소비는 했지만 이제 어떻게 갚지? 라는 뜻입니다. 대책이 없는 거죠. 하지만 요사이 인플레 현상으로 어려워지자 또 다시 다른 방책을 강구하는데요. 하지만 밑에 깔린 본능은 죽지 않았지요. 다만 감출 뿐이니까요.
오늘 복음에 나온 부자는 많은 소출을 거두자, 예전의 곳간을 헐고 더 큰 창고를 지으며 흡족해합니다. 이 부자는 소비의 플렉스가 아닌, 모으는 재미의 플렉스를 한 겁니다. 아시잖아요? 은행 잔고가 쌓일 때 드는 느낌말이지요. 하지만 결국 “누구의 차지가 되겠느냐?” 란 질문에 우린 대답하지 못합니다. 너무나도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누구에겐가 뜯길 것이니까요. 그럼 뜯길 때 뜯기더라도, 뺏길 때 뺏기더라도 기분좋게 기쁘게 준다면 그 마음은 억울함이 아닌 능동적인 나눔의 기쁨이 될 텐데요.
오늘 기념일을 맞이한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는 순교를 통해 맹수의 먹이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답니다. 자신은 이미 주님에게서 많은 것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기에 기뻐했던 것이지요. 괜히 드러내거나 대책없는 자랑이 아니라 말입니다. 독서에 나온 데로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란 말씀처럼 당신이 이미 주신 선물을 잘 찾을 때, 그 누군가들처럼 허하지 않는 삶이 되겠지요. 허하지 않다면 뽐낼 필요도 없고요. 알아주지 않는다고 화낼 이유도 없겠지요. 그저 기쁨의 삶을 남들과 누리겠지요. 그럼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