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6주간 월요일

2022. 9. 26. 오전 11:4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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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26주간 월요일

 이곳 복사들과 안면을 트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어느 날 제의를 입고서 물어봅니다. ‘너는 복사 서는 게 왜 좋아?’ 그러자 이런 대답이 들려옵니다. ‘신부님을 도와드리고 싶어서요요즘 아이 같지 않게 영악한 대답이 아니라 순수한 마음이 묻어나는 대답이 나옵니다. 마치 복음에 누구든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이란 말씀처럼 가장 작지만 도와드리고 싶다는 말은 가장 힘있는 말이 아닐까요? 그럼 다 큰 성인들은 어떠합니까?

 악마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욥이 까닭없이 하느님을 경외하겠습니까?” 그만큼 하느님 당신께서 욥에게 많은 걸 주셨기에 하느님을 찬미하는 것이 아니겠냐? 는 계산적인 사고방식이 깔려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린 나도 모르게 늘 계산기를 두드리고요. 주판알을 튕깁니다. 그것이 지혜로운 것이라면서요. 그렇게 해야 이 험난한 세상을 속지 않으면서 살 수 있다고요. 그래서 제자들도 이렇게 말합니다. 스승님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보았기에 우리랑 달라서 못하게 막아보려고 했다 고요. 나랑, 우리랑 다르면 안된다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있는데요. 구분짓고, 편 가르고, 나름의 노림수로 살다보면 뭐가 훼손되는 지 아십니까? 자기가 어떻게 병들어 가는 지를 모릅니다. 남들은 그게 보이는 데 자기만 그게 안 보입니다. 그걸 못 봅니다. 말하고 있는 발언들이 본인의 입장으로는 지혜롭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그 안에는 수 많은 콤플렉스와 때가 묻어있습니다.

 앞서 복사 아이처럼 신부님을 도와드리고 싶어서요라는 이쁜 마음씨를 사람들이 곱게만 바라보지 않습니다. 당장 아이의 엄마는 아이를 깨워서 성당 보내는 게 힘들고요. 챙기기 부담스럽습니다. 그 시간에 학원에 가야하는데 그러질 못한다고 시간 뺏긴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아이가 실로 얻는 게 뭔지 아십니까? 단순히 신부님을 돕는 게 전부가 아닙니다. 그 너머, 그 신부님이 정성스레 기도하는 하느님까지 다다릅니다. ‘하느님이 누구시길래 저 신부님이 저렇게 할까?’ 라는 의문이 들면서 그 아이또한 하느님께 인도되는데요. 깨끗함과 순수함이 연약해 보이지만 실은 그 어떤 것도 넘어서는 초월을 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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