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미카 5,1-4; 마태 1,1-23
누구에게나 영원할 것 같은 세상일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잠시 스쳐지나가는 곳에 불과합니다. 채 100년도 넘기지 못하고 살다가는 이곳에서 우린 무얼해야 할까요? 그래서 누구는 족적을 남기고자 애를 씁니다. 이름을 남기려고, 명예와 권력을 가졌다는 것을 알리려고요. 그래서 죽어서 비석에 남길지 모르지만 역사의 재평가로 인해 좋았던 평가가 뒤엎어지는 불운의 시간이 되기도 하는데요. 여러분은 무엇을 남기고 싶으십니까?
오늘 복음에는 족보가 나옵니다. 우리집 족보도 잘 모르는데 왠 예수님 집안의 족보가 중요하냐고 여기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은 큰 물줄기 같은 흐름을 보여줍니다. 각 인물의 살아온 삶을 보면 더 잘 이해가 됩니다. 각각의 삶이 치열했으니까요. 그 시대에 적응하고 살려고 애썼으니까요. 꼭 순수혈통의 이스라엘 사람만 있지도 않았습니다. 이방인의 여인도 이 안에 들어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이 비록 알아주지 않아도 우린 살아내야 합니다. 우리가 시대를 선택하고, 부모를 선택해 태어나고 자란 게 아니니까요.
여기에 오늘 축일을 맞이한 성모님은 족보에는 간단하게 몇 글자로 나왔을 뿐이고요. 성경에도 많은 부분이 나오질 않습니다. 하지만 우린 압니다. 이분께서 예수님 곁에서 얼마나 같이 많은 것을 하셨음을요. 기록에는 다 나오지 않았지만 그분과 함께 살면서 주님의 삶에 동참하셨음을요.
누군가는 지금의 시대를 살며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이번 생은 망했어’ 별로 살지도 않았지만 지금이 마음에 들지 않기에 이런 원망조의 푸념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치 독서에 “너는 유다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 것 없지만” 이라는 단서가 붙었기에 실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끝은 아니었지요. 우리 하느님은 우리가 다 보지 못하는 때와 시기와 장소를 보십니다. 그리고 거기서 뭔가를 하기를 이뤄내길 바라십니다. 그러기에 어쩔 수 없이 세상에 순응만 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비록 내가 원한 것은 아니라지만, 그래서 내 맘대로 다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안에서 좌절하지 않고 일어서며 주님의 사업에 동참할 때 우린 가치있는 삶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는데요. 성모님의 협력처럼 여러분도 용기를 가지고 이 삶을 충실히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