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 기념일. 1고린 12,12-31; 루카 7,11-17
여러분께서는 여러분에게 만족하십니까? 예전 이솝우화에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새들 사이에서 가장 아름다운 새를 뽑기로 합니다. 다들 시합날까지 자기를 꾸미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헌데 까마귀는 고민합니다. 자기는 목소리도 안 좋고, 깃털도 까맣기만 하니, 이길 수가 없겠구나 여겨서, 다른 새들이 떨어뜨린 하얀 깃털, 노란 깃털, 파랗고 알록달록한 깃털을 모아서 자기 몸에 꼽았다가 그만 시합날에 남의 깃털이었음이 들통났다는 우화입니다. 까마귀가 왜 그랬을까요? 자존감이 떨어져서이지요. 자존감, 자아존중감은 자신을 객관화하여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입니다.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기고 어떤 성과를 낼 만한 유능한 사람이라고 믿는 마음이 자존감입니다. 물론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판단은 아닙니다.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착각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만, 반면 이것이 어느 정도 형성되지 않으면 앞서 까마귀처럼 남들을 부러워만 하면서 우울해지는데요.
교회에서도 이런 경우가 생기곤 합니다. 독서에 나온 것처럼 “모두가 사도일수야 없지 않겠습니까? 모두 예언자일수야 없지 않겠습니까?...” 처럼 남이 받은 은총이 부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의 은총은 각자 개인을 위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있는 거지요. 주위에 키 큰 사람도 필요하고, 머리 좋은 사람도 있어야 하고, 남을 잘 챙기는 사람이 있어야만 동네 일이 돌아가듯이, 여러 다양한 직업군이 형성되어야 그 사회가 제대로 맞물려 돌아갈 수 있습니다. 유행하는 한쪽만 있으면 안되지요. 마찬가지로 오늘 기념일을 맞이한 요한 크리소소토모 주교님은 강론을 잘하셔서 ‘황금입’ 이라는 금구(金口)라는 명칭까지 붙었습니다. 얼마 전 나온 ‘라자로의 대한 비유’를 풀이한 이분의 강론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과연 그 시대에 그런 이야기가 나왔을까 싶을 정도로, 가난함과 부유함이 주는 여러 문제에 대해 잘 진단하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사안을 꿰뚫고 있었던 거지요. 이런 은총의 선물을 주신 분이 누구십니까? 주님이시지요. 그래서 오늘 복음은 죽은 이마저 살리는 엄청난 주님의 기적을 보이십니다. 모두를 살리고 아우르는 그분의 힘을 보면서 무엇이 느껴지십니까? 우리를 주관하고 살리는 당신을 더 깊게 믿고 의지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