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0주간 목요일. 에제 36,23-28; 마태 22,1-14
가끔 귀 기울여야 합니다. 나를 이끄는 목소리의 정체가 무엇인지를요. 그리고 그 목소리의 실체가 무엇인지를요. 왜냐하면 나 스스로에게 속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들리는 목소리가 ‘진짜 내가 원하고 필요한 것’ 이라 믿게끔 만들 수도 있으니까요. 과연 그렇습니까? 혹시 그럴 듯하게 들리는 것은 아니구요?
오늘 복음에 하늘나라의 비유가 나옵니다. 여기서는 ‘혼인잔치’ 로 비유되죠. 헌데 흥미로운 사항은 초대를 받은 이들이 하나같이 거부하고, 가려고 들지 않습니다. 다들 이유를 댑니다. “밭으로 가고, 장사하러” 갑니다. 다른 복음에는 “새로 구입한 겨릿소를 부리러 가야한다하고, 방금 장가 갔다” 는 소리도 합니다. 여기까지 들으면 그럴 듯한 이유이니 어쩔 수 없다고 여길 수 있겠습니다.하지만 여기의 혼인잔치의 초대는 단순한 결혼잔치가 아니지요. 이 잔치는 세상 마지막을 맞이하는 자세입니다. 그리고 삶의 전환을 뜻합니다. 마치 혼인예복을 입지 않았다고 해서 쫓겨내보내는 상황은 너무한 것이 아니라 평소 당신을 맞이하는 자세가 어떤 지를 살펴야 함을 뜻하는데요. 우린 “당신의 마음과 영으로 살아야” 하니까요. 다들 그렇습니다. 남의 죽음은 보면서 정작 나의 마지막은 생각지 않습니다. 그저 남들 이야기로 치부하지요. 그러다보니 내가 계획한 것들은 중요하다고 여기면서, 정작 주님의 부르심에 대해서는 관심없어 하거나, 생각조차 하질 않습니다. 그저 내가 원하는, 나에게 감기는 목소리만 들으려 합니다. 당연히 다른 통로로 들려오는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주님의 목소리를 듣기 위함이지요. 그 목소리는 갑작스레 닥쳐옵니다. 내 예상치와 다르게 흐를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그런 목소리를 들었을 때, 해왔던 것을 과감하게 내려놓고 삶의 운전대를 꺾을 줄 아는 용기의 자세가 갖춰졌습니까? 아니면 그저 하던 대로만 하실 겁니까?’ 물론 하느님은 처음 초대받은 우리가 거절한다고 해서 아쉬워 할 분이 아니십니다. 복음처럼 다른 이들을 부르실 것입니다. 우리가 꼭 필요한 것도 아니십니다. 하지만 다른 이보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먼저 기회를 주신 건데요. 이 기회가 자주 오는 게 아니라는 걸 안다면, 내가 원하는 것으로 점철된 삶을 사는 게 현명한지 아닌 지는 살펴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