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마르타, 마리아, 라자로 기념일

2022. 7. 28. 오후 11: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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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마르타, 마리아, 라자로 기념일. 1요한 4,7-16; 요한 11,19-27

 내가 안다고 여기는 것을 과연 얼마나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진정 뭔가를 알게되면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음을 인정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이외의 것은 모른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비트겐슈타인이란 철학자도 이런 말을 합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라고요.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의미의 혼동을 일으키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그런 사건이 발행합니다 라자로의 죽음에 예수님은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지만 마르타는 마지막 날 부활 때 에 그럴 것이라고 알아듣습니다. 아마 예수님의 말씀이 단순한 위로라고 여겼을 수도 있고요. ‘부활 신앙이란 것을 생각조차 못한 것이기에 못 알아듣고서 이런 대답을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 뒤에 나온 대답은 잘했지만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아직도 몰랐음을 분명해 보입니다.

 독서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차근차근 설명하십니다. 하지만 우린 여전히, 자기 나름대로 알아듣느라 그분을 축소시키고, 편집시키고, 일정 부분을 증폭시켜서 나만의 방식으로 재정립된 하느님을 마치 다 안다고 여길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것도 하나의 착각이라 할 수 있지요. 주님을 알아가는 시간은 마치 연애를 하듯이 상대방을 알아가는 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연애 때는 상대방의 좋았던 모습이 전부인 양 여기다가 나중에 간혹 낭패를 보곤 합니다. 그동안 상대방의 다른 측면은 애써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방식으로만 세상을 보진 말아야 하겠습니다. 세상이나, 사람 등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표현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시각을 키워야 하는데요. 누군가를 제대로 알면 참답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린 편협된 시각을 갖지 않기 위해서 오히려 더 큰 사랑을 만나야 하고요. 그러면서 사람들을 살펴야 합니다. 그러면서 자기 방식대로 사람들이 움직이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원망하진 말아야 하겠습니다. 나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진정 아는 것은 쉽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먼저 큰 사랑을 편협된 시각없이 잘 받아들여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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