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5주간 수요일. 이사 10,5-16; 마태 11,25-27
세상엔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있지요. 나보다 훨씬 뛰어난 이들도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보다 나은 이를 보면서 견딜 수 있는 인간적인 방법이란 뭘까요? 마음속으로 이렇게 읊조릴 것입니다. ‘나보다 많은 면에서 뛰어나지만... 그래도 내가 너보다 나은 면이 있다’ 라는 비록 근거는 없어도 이런 생각이 나를 견딜 수 있게 해주는데요. 이렇게라도 생각해야 내가 견디며 살 수 있을런 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나를 어떻게든 변호하려는 생각을 가지다보면 사람이 교만해지고요. 나보다 나은 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나 잘난 맛을 되새기면서 나를 지켜내려고 말이지요.
예전 스페인 선교사로 1601년에 북경에서 선교한 판토하 신부님이란 분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명나라 신종을 알현한 후 궁중에서 악사들에게 서양음악을 가르치며 궁의 관료들과 친분을 쌓았는데요. 그러다 1616년 중국 천주교의 공식 첫 박해인 남경교난이 일어나면서 마카오로 추방당했다가 그곳에서 47살에 병사하셨는데요. 이분이 남긴 저서 중에서 우리나라에도 전해진 '칠극(七克)'이란 책에서 7가지의 죄를 소개합니다. 그중 교만에 대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교만이란 분수에 넘치는 영예를 원하는 것이다. 큰 가닥을 추리면 4가지가 있는데 ① 선함이 자기에서 나온다고 여겨서 천주께 돌리지 않는다 ② 선함이 천주로부터 나오는 줄 알면서도 자기의 공으로 여긴다 ③ 실제로 없는 것을 있다고 뽐낸다 ④ 남을 우습게 보아 스스로를 다른 사람보다 특별하다고 여긴다. 여기에 성 그레고리오도 말합니다. 교만은 모든 죄의 임금이다. 한 번 마음에 들어오면 온갖 다른 죄악이 딸려서 들어온다.’
독서에 나옵니다. “도끼가 도끼질하는 사람에게 뽐낼 수 있느냐? 톱이 톱질하는 사람에게 으스댈 수 있느냐?” 그렇지요. 도구보다 그 도구를 만드신 분을 경외하고 섬겨야 하는데요. 그런 정신이 복음에 나옵니다.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자신을 솔직하게 들여다 봅니다. 물론 자랑하고 싶은 면도 있고 모자란 면도 있지요. 하지만 그걸 허락해주신 분께 무엇을 돌려드리고 있나요? 그분이 도와주셨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