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이레네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2022. 6. 28. 오전 7: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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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이레네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아모 3,1-12; 마태 8,23-27

 사람이 가지고 있는 약함, 한계에 대해 어떻게 보시나요? 약해보여서 하잘 것 없고 천해보입니까? 아니면 이른바 믿음, 주님의 은총으로 이 모든 걸 뛰넘을 수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 수 있지만 여기서부터 출발할 수 있는데요. 그건 바로 사람에 대한 이해와 사랑입니다. 이레네오 주교님 기념일입니다. 매일미사 책에 잘 나온데로 영지주의라는 이단과 싸우셨답니다. 그럼 영지주의가 뭐길래 사람들이 여기에 푹 빠졌을까요? 영지주의가 기원전 2-3세기에 나타났지만 실제 시작은 이데아 사상을 말한 기원전 400년 경의 플라톤의 사상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영지주의, 그노시스는 지식이란 뜻으로 만물을 알고, 영적이고 신성한 것에 가치를 둡니다. 육체는 쇠하고 죽기에 쓸모없는 것이고, 영혼은 선하고 가치 있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신은 초월적이고 절대적이기에 육체에 속하지 않는다고 여겼습니다. 대단히 단순하고 이분법적입니다.  원래 이단의 가르침은 간단명료합니다. 그래야 쉽게 알아들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리스도교는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교리를 가르칩니다. 이것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습니다. 신성과 인성의 결합이 구세주라니요? 우리도 그렇잖습니까? 약하고, 능력없고 수준이 떨어지는 사람과 함께하기 꺼려는 경향이 있잖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의 한쪽만 받아들이려 합니다. 이른바 인성은 거부하고 하느님의 영을 더 선호하고, 예수님의 놀라운 능력과 지혜와 깨달음에 치중합니다. 이러면 무엇이 문제일까요? 사랑이 없습니다. 사랑이 없다는 건 사람에 대한 이해심이 부족하다는 뜻으로 이어집니다.

 오늘 복음은 풍랑에 시달린 제자들을 보며 꾸짖으시는 내용이기에 언뜻 무조건 믿으라는 차원으로 받아들인다면 이는 오해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 육화를 통해 오셨습니다. 단순히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는 차원이 아니라 인간의 약함을 껴안고 받아들이면서 하느님께 나아가자는 독려의 차원입니다. 예를 들겠습니다. 영지주의적 경향이 있는 사람입니다. 복음에 잃었던 아들 비유의 아버지와 같이 있던 첫째 아들입니다. 첫째는 모범생이었습니다. 늘 아버지 곁에 있었고요. 집 나간 동생을 이해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그는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마음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그냥 받고 싶은 것을 받으려 옆에 있었던 것 뿐입니다. 우리도 이럴 수 있습니다. 나는 너랑 달라 하면서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약함, 철부지같은 모습이 어떻게 보이십니까? 마치 아이에게 설명해주듯 차근차근 사랑스런 눈으로 봐주며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당장 내 맘대로 안된다고 성질내고 미워하며 혼내기만 할 것이 아니라 같이 해주며 독려해주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우리 자신도 내가 아는 차원에서 사람을 구분하고 등급을 나누는 영지주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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