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거룩하신 예수성심대축일. 사제 성화의 날.
에제 34,11-16; 로마 5,5-11; 루카 15,3-7
오늘 여러분이 들으신 말씀들은 하나같이 잃은 양을 찾아오고, 데려오고, 치료하고, 먹이고, 보살피며, 죄인 하나가 회개한 것을 기뻐하는 내용입니다. 신부로 살면서 가장 어렵고 힘들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사람 하나가 자기 욕심으로 하느님을 거부하고 멀어질 때입니다. 그래서 찾아 나서지만 그 손길을 뿌리치고 무시하고 계속 자기 길을 갈 때 입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자기 인생이니 자기가 알아서 하겠지’ 할 수도 있지만 그걸 지켜보는 사정이 한편으로 참 안타깝습니다. 본인 스스로 ‘잃은 양’임을 모르고 인정하지 않는데요.
예전 삼성의 고(故)이병철 회장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 적이 있습니다. ‘하느님은 계시는가?’ ‘성경에 부자가 천국 가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어렵다는데 그럼 부자가 악인이란 말인가?’ ‘이탈리아는 로마에 교황청이 있을 만큼 천주교 국가인데 범죄율은 왜 그리 높은가?’ ‘천주교와 공산주의는 상극이라는데 (당시) 폴란드 등의 동구권 나라 중에 천주교 국가이면서 공산주의가 그리 많은가?’ 등 꽤나 현실적이고도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에 대해 ‘잊혀진 질문’ 이라는 차동엽 신부님이 답한 책, 예전 천주교 경제인 연합회 회장을 역임한 유영희 회장의 답, 개신교인으로 보이는 철학자 김용규, 최근 조규만 주교님까지 그의 똑같은 질문에 대해 각자 나름의 대답을 쓴 책들이 있습니다. 저는 교리를 담당하고 사회인들과도 만나야 하기에 이런 질문에 대해 시대에 맞는 적절한 대답을 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답을 해야 합니다. 저는 신부이니까요. 곁에 있는 교우들이 쉽게 냉담하고 떠나버리는 현실속에서 그들을 찾고, 타이르고, 잔소리 하고, 기다려야 하는 것이 저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위의 이런 질문이라도 던지면 희망이 있습니다. 그 대답을 듣고 돌아올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아무 질문도 없는 현실이 본당에서 이어집니다. 게다가 심각한 질병에 걸린 교우들이 기도를 해달라는 요청도 하지 않으려 합니다. 자기 사정이 알려지길 원치 않는다면서요. 그럼 어떻게 여러분을 도울 수 있을까요? 마음을 닫아버리고 사는데요. 결국 자기 식대로 믿는 것이 얼마나 본인을 병들게 만드는 지를 인정해야 하는데요.
물론 저도 성공보다 실패할 때가 많습니다. 마음이 덜 열려서, 그리고 저도 지쳐서, 포기하거나 외면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를 위해 기도해줘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을 위해서, 여러분은 제가 지치지 않고 예수님의 사랑이 흘러나와야 하기 위해서 말이지요. 서로 상생하는 공동체를 만나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