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7주간 목요일.

2022. 6. 2. 오후 3: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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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7주간 목요일. 사도 22,30-23,11; 요한 17,20-26

 이런 단어를 들으면 어떤 감정이 드십니까? 갈등, 다툼, 분란, 혼란... 미간이 찌뿌려지며 불편하십니까? 혹은 뭐가 되어가는 과정중이라 여겨지십니까? 뭐든지 쉽게 얻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건 가짜이며 사기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는 누군가 미리 알고서 양보를 해줬기에 가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원한다는 평화, 화합, 일치가 오려면 뭐가 필요할까요? 나는 아무 것도 안하면서 그게 오길 바라진 않으시겠지요? 그건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나 자신이나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합니다. 그러면서 처음에는 분란이 일어난 것처럼 보였지만 점차 보입니다.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가짜인지를요. 그제서야 참, 거짓이 드러납니다.

 오늘 바오로는 일부러 일을 저지릅니다. 거기 모여든 사람들이 일부는 사두가이요, 일부는 바리사이인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믿고 있던 신앙의 생태를 알기에 그는 일부러 크게 외칩니다. 나는 죽은 이들이 부활하리라는 희망 때문에 재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일대 소란이 벌어집니다. 그러면서 마치 액션영화처럼 상황을 빠져나갑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증언해야 할 본 무대인 로마에 갈 수 있으니까요. 바오로는 다 알고서 일부러 그런 것입니다. 그들의 신앙에 갈등을 일으킬 불을 지르며, 그들이 믿고 있던 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들 스스로 확인시켜주는 방법이었습니다. 당연히 예상대로 흘러갑니다.

 우리도 가끔 확인을 해야 합니다. 갈등을 통해 진짜가 무엇인지를요. 우리 중에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게 평화 같지만 실은 겁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가끔 아이들이 커서 엄마가 몇 십년 전에 나에게 서운하게 대했다는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땐 엄마에게 말하기 두려워서 말을 못했지만, 크니까 그제서야 말을 꺼냅니다. 당연히 엄마는 그런 일이 있었는지 조차 몰랐지만 아이는 속으로 끙끙 앓고 있었던거죠. 그나마 그걸 얘기라도 하면 다행일 겁니다. 갖고 있던 것을 꺼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평화를 바라십니까? 복음처럼 하나가 되길 바라십니까? 그렇다면 먼저 우리 안에 놓여진 문제부터 봐야겠습니다. 그냥 고요하고 맑은 물 같지만 실제로 그 밑에 깔린 흙투성이를 꺼낼 때에야 비로소 물은 깨끗해질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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