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4주간 월요일. 사도 11,1-18; 요한 10,1-10
하던 방식이 제일 편하고요. 먹던 음식이 제일 맛있지요. 그래서 삶의 방식도 쉽게 바꾸려 들지 않습니다. 어색하고 불편하니까요. 하지만 그게 정답일까요? 만약 ‘정답은 아니다’ 라는 반론이 몇 %라도 있다면 그 이유가 뭘까요?
여기서 잠시 당시 현대인들에게 교회의 본질을 알리고 교회를 개방하려 했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최를 선언한 1959년으로 가봅니다. 교황 23세는 당시 필요성을 가졌습니다. 당시 미사를 비롯한 모든 7성사는 라틴어로 하고 있었고요. 벽을 보고 미사 드리며, 가르치는 교리는 그 시대와 동떨어진 이단 논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시대는 미•소 냉전시대, 한국전쟁, 베를린 장벽을 세우던 폐쇄적인 시대였습니다. 여기에 교회가 자국어 미사에, 그리스도교적 인간관과 세계관을 제시하며, 보수적인 교회에서 사회교리까지 언급합니다. 당시 교회인들의 반응이 어땠을까요? 물론 다 좋아라 하지 않았습니다. 세계적으로 2만여 명의 성직자, 수도자가 교회를 떠났고요. 당장 교회가 망할 것처럼 여긴 이들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다음카페 모임에는 여전히 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 전례를 하려는 이들의 모임이 있습니다. 하지만 60년이 지난 지금, 과연 누가 옳았을까요?
오늘 말씀은 주님을 따르는 이들이 겪어야 할 어려운 사안을 다룹니다. 예수님은 “나는 양들의 문이다” 라며 낯선 이들의 목소리를 조심하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독서의 베드로가 본 환시처럼 당시 할례를 받지 않은 이들과 음식을 먹고, 율법에 금지된 것을 잡아먹게끔 시키는 모습은 아무래도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여기서 무엇이 보이십니까? 앞서 공의회가 교회의 근본정신을 지키며 쇄신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도 매일 조금씩 새로운 세상을 삽니다. 처음엔 유대인들과 아직 주님을 모르는 이들을 위한 구원이었지만, 처음 대상자인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거부하면서 오히려 우리가 혜택을 받고 있는데요. 그렇게 매번 하던 대로만 하려는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 서쪽벽에서 지금도 구세주를 기다리는데요. 항상 새롭게 무언가를 하시려는 새로우신 주님을 뵈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