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팔일 축제 목요일
오늘 말씀은 ‘기적’을 보고서 놀라움과 경탄을 하며 빚어지는 내용들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시대에도 기적과 같은 일은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자신의 이성, 생각을 넘어서는 일이 벌어지는데, 이 초자연적인 일을 당연하다는 듯이 넘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노벨상 수상 과학자인 아인슈타인조차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말은,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다’ 라고요. 내가 이 세상을 살고 있다지만 실제로 여기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보며 “이해가 다 되고, 설명이 가능하다” 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삼라만상을 꿰뚫고, 모든 분야에 능통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설사 어느 분야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할 지라도 말입니다.
‘인간의 언어로 차마 설명이 가능하지 않음’ ‘우리의 생각을 넘는 그 무언가’를 우린 ‘신비’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의 대 신비가인 위디오니시우스는 ‘하느님은 어떤 것과도 다르고, 다 설명할 수 없기에 정의내릴 수 없다’ 고 말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설명할 때도 단지 은유적으로 유비적으로 표현 할 뿐이라고 말합니다. 무한한 분을 설명하려면 인간의 언어라는 것이 너무 한계가 많기에 무한자이신 그분을 설명할 수 없다는 건데요. 다만 유한한 것의 나머지 전부는 무한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느님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은 아니다” 라는 부정의 말뿐입니다. 그래서 부정신학이라고 말하는데요. 예를 들자면 ‘“하느님은 선하시다” 라고 말하면 안되고, 다만 하느님은 악하지 않다라고 말해야 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선하시다’ 라는 용어로 하느님을 표현하는 것에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 우리와 같은 방법으로 선하신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지안조의 그레고리오 성인은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만물을 넘어서고 계신 당신이시여, 당신을 찬양함은 이뿐이어라’ 읊조립니다. 당신은 우리를 넘어서시기 때문인데요.
우린 어떻게든 쉽게 설명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설명이라는 것도 완전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그분은 경외할 분이시고, 나보다 크시며, 고로 겸손할 수 밖에 없음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럼에도 가끔 우릴 넘어서는 뭔가를 보여주십니다. 그러기에 그냥 받아들여야 합니다. 어설픈 설명을 시도하는 것은 본질을 해치고 왜곡시키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