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4주간 화요일. 에제 47,1-12; 요한 5,1-16
언젠가부터 때에 맞게 행동하도록 배웠습니다. 날씨에 맞게 옷을 입고요. 가는 장소에 따라 격식을 갖추고요. 점잖아야 하는 자리와 노는 자리를 구별하면서 말이죠. 허나 상황에 맞게 그렇게 구별하는 연습을 해놓고서는 정작 ‘착한 일’을 해야 할 때는 왜 그리 주저할까요? 무엇이 두려워서요? 누구 눈이 두려워서요?
독서와 복음에는 똑같이 ‘물’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물은 생명을 가져다주고요. 넘치도록 흐르고요. 그 물을 마시는 이와 몸이 담겨진 이는 회복이 되고요. 모든 것이 살아나는 물입니다. 우린 매 미사를 통해 생명의 원천인 당신을 만나고요. 당신을 영하고요. 당신을 음미합니다. 그러면서 구별이 아닌, 초월의 삶으로 넘어갑니다. 생명을 반대하고 거스르는 모든 것을 넘머서고요. 금지되는 것을 너머서며 한 생명을 살리기위해 무슨 일이라도 하려듭니다. 마치 무모해보이고 어리석어 보이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처럼 말이죠.
당신은 살리기 위해 경계를 넘으며 나아가시는데 정작 우린 무엇이 두렵나요? 나의 가진 사랑을 펼치는데 있어 무엇이 방해된다고 여기기에 그나마 가진 사랑이 쪼그라들고 있을까요? 가만히 나를 들여다보며 움츠러 들었던, 남의 눈치가 보여서 하지 않았던 것을 해봐야 하겠습니다. 나이가 들면 겁이 많아지기도 하지만, 한편 금기를 넘는 대담함도 가지며 ‘이젠 해도 돼’ 하는 용기도 생기며 무서울 것이 없어지기도 하는데요. 여러분은 실행할 마음이 열려 있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