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2주간 수요일.

2022. 3. 15. 오후 11: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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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2주간 수요일. 예레 18,18-20; 마태 20,17-28

 주변의 사람들이 다들 그렇지요? 건강하길 바라고요. 부자되길 원하고요. 장수하길 바라고요. 하지만 그동안 제시해 온 교회 가르침이 이러지 않았다는 근거를 드린다면 여러분은 어떤 느낌이 들까요? 전 좀 걱정이 됩니다. 여태껏 교회는 편안함과 안락함을 목표로 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냐시오 성인의 영신수련이란 것이 있습니다. 스페인 사람으로 처음엔 기사를 꿈꾸던 그는 1521년 전쟁 중 부상을 입고서 교회가 세운 병원에 입원합니다. 뭐 읽을 게 없나 살피던 중, 교회가 세운 병원이니 성인들의 꽃’, ‘그리스도의 생애같은 교회서적을 보면서 그는 회심합니다. 그동안 기사로서의 부귀영화, 공을 세우는 것들이 하잘 것 없음을 깨닫고서, 그는 예수회에 입회하여 유명한 영신수련이란 영적 수행방법을 쓰는데요. 1541년에 나온 이 짧은 지침은 교황 바오로 3세에 인준을 받아 지금도 수도원과 신학교에서 쓰이고, 일반 신자들의 피정 자료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23원리와 기초에 보면 이런 글이 나옵니다. 사람은 주 하느님을 찬미하고 흠숭하며 자기 영혼을 구하도록 창조되었다. 그러기에 우리 자신을 피조물에 치우치지 않게 해야 한다. 병보다 건강을 원치않고, 가난보다 부를 원치않고, 불명예보다 명예를 원치않고, 단명보다는 장수를 원하지 않으며 창조된 목적으로 이끄시는 것만을 바라고 선택해야 한다.’ 제가 잘못 읽은 것이 아닙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건강, 부유함, 명예, 장수를 누리길 바라지만 그것이 하느님을 찾는 데 방해가 된다면 이는 단순히 속세를 초월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창조된 목적을 찾기 위한다면 그걸 원하지 말아야 한다는데요. 여러분도 하실 수 있으신지요?

 독서에서 예레미아 예언자는 궁지에 몰립니다. 사람들이 그자가 없어도 언제든지 가르침, 조언, 예언을 얻을 수 있다면서 예레미아가 하는 말은 무엇이든 무시해버리자는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바른 말 하는 사람을 재수없다며 싫어하는 건 예나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예수님은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방금 말씀하시지만 제배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는 스승님의 나라에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편과 왼편에 앉게 해달라 청탁을 합니다. 물론 경제적 안정, 편안함은 사람에게 여유를 줍니다. 하지만 반면 우리를 게으르고 늘어지게 만들며,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고요.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리면서 세상 것에 연연하게 만드는데요. 잘 살아보겠다고, 예전보다 제대로 살아보겠다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헌데 자꾸 예전 버릇으로 돌아간다면 결국 퇴보하는 꼴 밖에 안되겠지요. 자신을 단련시켜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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