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1주 금요일.

2022. 3. 10. 오후 11:4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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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1주 금요일. 에제 18,21-28; 마태 5,20-26

 올바른 길을 하겠다고 나섰다가 끝내 그 길을 버리고 등진 채, 그보다 못한 길을 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누구는 이런 행동에 손가락질을 하고, 혀를 차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재야, 진보 인사가 우익으로 가기도 하고요. 큰 뜻을 품었지만 현실의 안주로 마무리 짓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건 성직자, 수도자도 해당됩니다. 물론 쉽지 않았을 겁니다. 현실적으로 결실도 없고, 돌아오는 반응도 별로구요. 주위 사람들의 걱정 어린 말들도 한 몫 했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정의롭고, 바른 일을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고독이 동반되고, 평가도 안 좋을 수 있으며 주위 사람들이 떠나기도 합니다. 주님의 길은 공평하지 않다 며 푸념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제 어쩌면 좋을까요?

 인정할 것을 인정해야겠습니다. 사람들이 항상 이성적이고, 똑똑하며, 합리적이고 올바른 것에 언제나 손을 들어주고, 편들어주진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익에 눈이 돌아가고요. 비합리적이고, 기분에 도취되고, 당장의 만족을주는 것에 호응하는 경향이 짙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을요. 대중의 심리에 그런 것이 들어 있습니다. 남들을 탓하자는 차원이 아닙니다. 그리고 나 자신도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본능에 그런 점이 들어있다는 점을 인정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려운 겁니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이란 문장에 유독 초점을 맞춘 이유가 그것입니다. 율법학자나 바리사이들은 마치 지금의 성직자, 수도자처럼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 있으려면 당연히 해야 할 것들입니다. 설사 싫어도 말이죠. 하지만 의무에만 메이면 그냥 의무감입니다. 사랑은 없지요. 여러분도 그렇습니다. 의롭고 꼭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그것을 해야 한다는 사실은 알지만 여기에는 용기가 필요하고요. 버텨낼 재간도 필요합니다. 사람이 뭔가를 안다고, 꼭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신앙을 가지며 2가지를 알게 됩니다. 하나는 사람의 어쩔 수 없는 본성을 파악하구요. 둘째로는 그럼에도 해야 할 것을 해낸 예수님을 닮는 자세입니다. 당신이 보여주신 삶이 불가능한 것으로 끝내진 않았기 때문입니다. 용기를 내며 실천이 나오는 기도의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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