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6주간 화요일. 야고1,12-18; 마르 8,14-21
과학자들이 하느님께 나아가 자랑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느님, 당신께서 온 세상 생명을 창조하셨다고 하셨지만, 이제 우리도 그것을 할 줄 압니다. 저희가 가진 기술이 좋아졌기 때문이지요. 이제 여기서 사람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그러자 하느님이 ‘그럼 한 번 보여줘 봐’ 했습니다. ‘자.. 여기 흙을 가지고요..’ 하면서 땅에 있는 흙을 모으기 시작하자, 갑자기 하느님이 제지하며 막습니다. ‘어이 잠깐만. 뭘 하려거든 니것을 가지고 해야지, 그 흙도 내가 만든 거잖아?’
그렇지요. 과학이 발달했다고 하지만 결국 주님이 만드신 것을 가지고서야 할 수 있는데요. 그래서 저는 예비자 교리 때에 이렇게 설명합니다. ‘과학은 생명의 탄생을 이렇게 설명합니다...‘과학은 아직까지 생명의 기원을 설명할 수 있는 진화론은 없습니다. 그래서 물질 탄생 설명에 대해 어떤 과정에 의해 저절로 생겨났다’ 라면서 시작합니다. 하지만 과학이라면 탄생 과정을 자세히 설명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러질 못합니다. 즉 과학은 유기물에서 다른 유기물로의 변이과정은 설명하지만, 아무 것도 없는 무기물에서 유기물로의 과정을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과학은 신비로운 하느님의 영역에 대해 실험과 연구를 통해 설명할 수 있는 부분까지는 설명합니다만, 아무 것도 없는 것에서 창조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우린 가끔 착각합니다.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여기지요. 그래서 인간적으로 준비, 계획, 노력합니다. 물론 필요합니다. 하지만 여기엔 함정이 있습니다. 하느님이 들어오실 수 있는 통로를 막아버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러 애쓰는 노력으로 뭔가를 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합니다만, 그러다 잘되면 내가 잘나서고요. 안되면 하느님 탓으로 돌리는데요. 여기서 나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오늘 “바리사이의 누룩, 헤로데의 누룩” 이 뭐길래 주님은 조심하라고 하실까요? 누룩은 빵이나 술을 만들 때 부풀게 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허나 부풀게 해주는 데 필요하지만 결국 보조제입니다. 바리사이나 헤로데가 가진 권한은 백성을 위한 도움을 주는 자리인데, 그들 스스로 공적인 것을 사유화시키고 자기 것 마냥 굴었기에 문제가 생겼는데요. 여기에 주님은 오천 명을 먹일 때, 사천 명을 먹인 것을 상기시키십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없는 와중에서 이끌어내셨기 때문입니다. 무에서 유를 끌어내시는 주님의 힘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