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주일.

2022. 1. 22. 오후 7:5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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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3주일. 느헤 8,2-10; 1고린 12,12-30; 루카 1,1-21

 교우 여러분과 만나면서 여러 말씀들을 듣곤 합니다. 현실적인 문제들입니다. 생활이 빈곤하면서 늘어나는 걱정과 불안함입니다. 뗄레야 뗄 수 없는 문제에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냥 단순하게 미사만 참례하면 될까요? 내가 하고 싶은 봉사활동을 하면 될까요? 아니지요. 살고있는 현실이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되고 사랑이 넘치길 희망합니다. 변화가 가능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전환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그게 가능할 때 나의 삶도, 세상도 달라지는데요.

 예전에는 교리문답처럼 기도문과 중요교리만 알면 된다고 여겼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외웠습니다. 하지만 교회가 발전하며 그게 전부가 아님을 알았습니다. 자기가 사는 현실에서 그리스도를 증언해야지, 자기가 사는 현실을 외면한, 주입식 종교활동은 결국 모두를 죽인다는 것을 봤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서구 열강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그리스도교가 들어왔기에, 성당을 지을 때 외국 성당 생김새처럼 지어야 성당 같다고 여기는, 우리들의 막연한 선입견이 그러하구요. 미사는 잘 참례하되, 밖의 세상을 살 때에는 일반 사회인보다 더 악착같은 모습으로 사는 우리들의 이중성을 당연하듯 여기면서, 주일은 종교생활을 하는 나로써, 나머지 평일은 일반 시민으로 사는 것이 당연하다는 자세를 누구도 무어라 하지 않는, 문제가 문제라고 여기지도 않는 우리의 모습을 보는데요 이제 무엇이 필요할까요? 우리가 들은 복음을 나의 시각으로 한정시키지 않는 자세가 필요한데요. 우린 하느님이 주신 세상을 제대로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가 무엇이 문제일까요? 환경오염, 전염병 창궐 등 많은 문제가 있지만 경제 분야 하나만 소개하며 복음과 연결 시키겠습니다.

 2007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부터 촉발된 대침체 시기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왜 갑자기 미국 이야기를 꺼내는가 하면, 미국에서 촉발된 사태가 쓰나미처럼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끼쳤기 때문입니다. 이 대침체를 겪으며 미국에서만 88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습니다. 공사장, 학교, 비영리단체, 대형할인점과 자영상인까지요. 물론 엄밀히 말해서 일자리가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과거와는 달라졌습니다. 남들은 일자리라고 불렀지만 내용을 보면 프리랜서의 임시직, 계절성 일자리, 기간제 일자리, 심지어 파트타임들이었습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2005년에서 2015년 사이에 경제에 추가된 일자리의 거의 전부가, 기간제이거나 대안적 성격이었구요. 이런 계약직, 임시직을 긱 경제(Gig economy)라 부릅니다. 이는 대혁신의 시대가 아닌, ‘대착취의 시대라 기억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을 사람답게 여기지 않으며 사람을 과로사로 몰고, 노동자가 제대로 쉬지 못하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제가 뉴스나 다큐멘타리에서 볼 법한 말씀을 꺼낸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사랑한다면, 내가 서 있는 위치와 자리에서 사랑을 이끌어야 하는데요. 오늘 말씀에서 답을 찾겠습니다.

 1독서의 느헤미야서는 율법서의 내용을 남녀노소가 알아듣을 수 있도록 읽어주는 장면입니다. 그러면서 주님께서 베푸시는 기쁨이 바로 여러분의 힘 이라 설파합니다. 복음에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사명을 선언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잡혀간 이들에게.. 눈 먼 이에게.. 억압받는 이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선포하십니다. 2독서는 각 민족들의 중요성을 말하며 한 지체가 고통을 겪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겪습니다.” 는 내용은 이곳은 모두가 사는 곳임을 말하고요. 성령의 은사는 우리 모두의 공동을 위해서 활동하셔야 함을 선포합니다. 예전에는 그랬다면 현실은 어떻습니까? 정말 말씀대로입니까? 아니면 나도 모르게 그분의 뜻하심과 활동을 축소시킵니까? 우리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고약한 게 들어있습니다. 내가 받지 못하면, 남도 받지 못해야 하고, 내가 받으면, 남은 그보다는 덜 받아야 한다 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에 사로잡히면 사촌이 땅을 사면 질투심에 배가 아프고요. 남이 나와 같은 레벨이 되는 것을 참지 못합니다. 당연히 현실은 암울지는데요.

 사랑하는 이문동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사랑을 하고 계십니까? 나의 이득을 위하는 자세가 아닌, 한 지체가 받는 고통을 염려한다면, 나는 예전에 가졌던 사랑보다 사랑을 더 크게 할 수 있을 것이구요. 메마르지 않는 나의 삶을 가꿔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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