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22일. 사무엘 상 1,24-28;루카1,46-56
간혹 비행기를 타고 외국을 다녀오신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때 기분이 어땠습니까?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멋진 경치의 자연을 보고, 쉽게 맛볼 수 없었던 음식을 먹어보면서 색다른 경험을 해보셨을 텐데요. 이렇듯 자연을 바라보면 우리의 눈길을 끄는 자연의 세 가지 본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세 가지란 자연의 힘과 아름다움과 장엄함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이 자연을 개발하고 아름답게 꾸민다지만 원래 그 자연이 가졌던 장엄함 앞에서 경외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곤 하는데요. 그렇다면 나는 그 자연을 만드신 하느님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습니까?
오늘 독서의 한나는 어렵게 얻은 자식, 사무엘을 사제 엘리에게 데리고 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주님께서는 제가 드린 청을 들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아이를 주님께 바치기로 하였습니다. 이 아이는 평생을 주님께 바친 아이입니다.” 어렵게 얻은 자식을 하느님께 바친다는 것,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점점 대다수의 젊은 부모님들은 자녀때문에 속상해합니다. 그 아이가 내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말입니다. 내 것이니까, 내 생각대로 키워야 한다는 판단이 선 것이죠. 하지만 사람을 쓸모있는 소유의 대상으로 여기다 보면 사람의 생명을 생명답게 보지 못하고 맙니다. 생명답게 보지 못한다는 말은, 그 생명의 원래의 본성을 무시하겠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다 보면 결국 하느님의 뜻도 내 맘대로 바뀌어야 한다고 믿게 됩니다. 그녀는 이미 아이만 낳게 해준다면 그 아이를 바치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그녀에게 있어 아들은 엄마의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선물을 주신 분께 다시 돌려 드려야 할 대상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미 낳음을 허락해 주셨기에 이제는 하느님의 것이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복음에 나오는 내용은 그 유명한 ‘마리아의 노래’ 마니피캇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진정한 찬미의 노래를 바치는데요. 시골처녀 출신 성모님이 이런 노래를 할 수 있었던 배경은 하느님을 진짜 하느님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우린 압니다. 이미 우리의 기후가 이렇게 변해버렸지요. 마찬가지로 각 사람의 본성을 잘 보고, 하느님을 참된 신, 하느님으로 받아들일 때 내가 어떤 신앙인인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주여 나를 온전히 받아주소서.” 라고 봉헌성가에서만 부를 것이 아니라 참된 나를 어떻게 바쳐드리고 싶은지를 잘 볼 때, 내가 가야 할 방향도 보일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