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2주일(사회교리주간). 바룩 5,1-9; 필리 1,4-11; 루카 3,1-6
제게는 동기가 있습니다. 여기서 말씀드리는 동기란, 중고등학생 시절 성당 주일학교 동기들입니다. 이제는 50줄에 접어들었기에 다들 각자 삶을 삽니다. 월급쟁이도 있고요. 자영업을 하는 친구도 있고요. 회사에서 노조 부위원장을 하는 친구도 있습니다. 각자의 삶에서 느낀 얘기를 쏟아냅니다. 그들의 치열한 현장 이야기를요. 그럼 저는 무슨 얘기를 할까요? 아무 얘기도 안 합니다. 듣고만 있습니다. 하지만 들으면서 이런 것이 떠올랐습니다. 예전 동기 신부님이 해준 이야기입니다. 보문동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 신부인데요. ‘요즘 사람들은 ‘노동’ 이란 단어를 싫어한답니다.’ 사실 일 안 하는 사람 없고, 일을 해야 먹고사는 사람들인데도, ‘노동’ 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어감 때문인지 꺼린다고요. 물론 노동조합이 벌리는 파업이나 집회가 불편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만, 분명 우리 안에는 차별이 존재합니다. 그런 차별을 우린 어떻게 대해야 하겠습니까?
교회가 그동안 말없이 벌린 사업이 있습니다. 사실 인간들의 모든 정치 이데올로기를 다 연구해 왔고요. 정치상에 있었던 모든 문제를 목도해 왔습니다. 교황 레오13세가 계셨던 1891년부터 지금까지, 많은 사회회칙과 교서를 발표했습니다. 이번 주간은 교회가 제정한 인권주의, 사회교리 주간입니다. 하느님이 세상을 만드셨듯이, 교회도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이기에 사회와 동떨어져서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좀 낯선 회칙을 논하기보다 그동안 성경에서 주장하였던 사항을 종합하여 소개해 볼까 합니다.
먼저 구약성경에 나오는 정의적 측면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정의는, 이스라엘 백성의 정체성을 형성합니다. 힘의 논리, 법의 논리보다 앞서는, 사람과 하느님 사이의 사랑의 관계입니다. ② 정의는, 사회적 약자인 가난하고 무력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를 명령하며, 오늘날 시행되는 어느 누구를 위한 선택적 측면이 아닌, 보편적 측면으로 반드시 해야 할 성격입니다. ③ 정의는, 항상 예언적 차원을 갖고 있기에 불의함에 대한 억압구조와 마찰을 빚습니다. 마치 탈출기에서 보듯 노예생활을 벗어나고자 이집트 탈출을 위해서 수 많은 희생과 갈등이 빚어졌듯이 말입니다.
그럼 신약성경은 어떻게 나올까요? ① 예수님의 가르침은 친구와 원수로, 부자와 가난한 자로 세상을 나누려는 경향을 극복합니다. ② 하느님의 결정적인 통치는 미래에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매일의 생활부터 시작되는 것이지, 현재 지금은 아니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③ 예수의 가르침은 삶의 전환을 요구합니다. ‘주님의 기도’처럼 하느님의 뜻, 그 나라가 지금 이 땅에 오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우리가 아는 진복팔단은 권력이나 부(富)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 대한 의존입니다. ④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 선포는, 사실 청중이 바라는 기대와 달랐습니다. 비유에서 보면, 한 시간을 일한 사람이나, 하루 종일 일한 사람이 똑같은 임금을 받는다거나, 증오의 대상이었던 사마리아 사람이 더 착하다고 말하거나, 부자가 돈을 벌어 그것을 담을 자기 창고를 더 크게 지었지만 그 목숨을 그날 밤에 거두어간다는 내용은, 기존 가치에 대한 도전이며, 다른 세상으로의 초대입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상황이 달라지면 예전 고생했던 시절을 다 잊어버리려 하거나, 어려운 사람 이야기는 남의 얘기처럼 생각하고 무시합니다. 마치 지금 청년들을 보면서 “열정이 없다” 거나,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 라는 이야기가 꼭 들어맞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 사회를 움직인 시스템과, 지금의 시스템은 다르니까요. 예를 들자면 그때는 비정규직 이라는 말 자체도 없었으니까요.
오늘 여러분이 들으신 말씀에서 이제 우리가 해야 할 바를 알려줍니다. 복음에는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시면서 소리를 들었다면 이제 제대로 가야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2독서는 “여러분의 사랑이 지식과 온갖 이해로 더욱 더 풍부해져, 무엇이 옳은지 분별할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라며 주님께 사랑을 배웠다면 더욱 판단을 제대로 하랍니다. 그러면서 1,2독서와 복음은 이렇게 마감되지요. “하느님께서 당신에게서 나오는 자비와 의로움으로, 당신 영광의 빛 속에서 이스라엘을 즐거이 이끌어 주시리라. 하느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자기의 역할을 잘했다면 우리 모두는 감사하는 삶을 살 수 밖에 없지요. 하느님 나라를 지금 만나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내 욕심을 채우기에 앞서서, 어떤 사랑을 하고있는 지부터 살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