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왕 대축일.

2021. 11. 20. 오후 5: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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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왕 대축일.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벌써 전례력으로 연말입니다. 올 한 해가 이렇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감염과 전염의 시대를 보내며 다가올 대선을 준비하는 때에 여러분의 마음 관리와 단속은 어떠하신지요? 우린 과연 무엇을 보며 살아야 할까요? 우리의 몸뚱아리는 성당에 와 계시지만 정작 여러분의 영혼과 관심은 어디에 가 있는지 보이십니까? 물론 열심한 분들은 성경 말씀과 강론에 귀를 기울이시지만, 어떤 분은 멍하니 딴 생각하는 분부터, 미사가 끝나면 뭘할까? 고민하는 분까지, 그야말로 동상이몽(同床異夢)의 현장이 벌어지는 곳이 바로 지금의 우리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제 전례력으로 연말이 되었으니, 다음 주간 부터 시작될 주님을 기다리는 대림 전까지 살펴야 할 것이 있는데요. 그건 우리가 가진 쓸데없는 힘을 빼는 작업입니다. 왜냐하면 그 힘이 우리 신앙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그 힘을 빼기 전에 이곳이 어떤 곳인지 살펴보겠습니다. 그래야 우리 신앙이 문제없는 신앙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들은 죽음을 앞둔 분들의 이야기입니다. 먼저 예수님은 빌라도 총독 앞에서 심문을 받습니다. ‘자칭 이스라엘의 임금이라는 죄명으로 끌려왔기 때문입니다. 헌데 예수님은 이렇게 답변하십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빌라도는 로마에서 파견나온 총독입니다. 당연히 총독 입장에서는 자칭 임금 행세를 하는 사람을 반역죄로 처형할 수 있습니다. 그걸 안하면 자신의 다음 행보가 곤란해지니까요. 다른 나라 총독으로 정치 인생을 마감할 수는 없잖습니까? 다시 로마라는 중앙 무대에 진출하려면 이 반역사건을 무사히 마무리 지어야 합니다. 헌데 예수님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하니, 답답할 노릇입니다. 뭔가 반역을 꾀했다는 증거가 있던가, 또는 자백을 받아내야 하는데, 일이 이상하게 흘러가니 말입니다. 그리고 올 한 해 김대건 신부님 희년을 맞이해 읽은 마지막 편지를 들으신 분은 이전과 문체가 달랐음을 보셨을 겁니다. 예전 편지가 대화체로 부드럽게 쓰여진 이유는 스승이신 프랑스 신부님께 프랑스어로 보낸 것을 번역하여 읽었기에 그랬던 것이고요. 오늘 읽은 것은 김대건 신부님이 감옥에 갇혀 처형을 기다리며 쓰신 것이기에, 독자층이 당시 조선 백성인지라 한문투가 많았는데요. 현재 이 편지의 원문은 절두산 성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담담한 어투로 가련한 세상에 한 번 나서 우리를 내신 임자를 알지 못하면 보람이 없고 살아도 쓸데가 없다. 모든 신자들은 천국에서 만나 영원히 누리기를 간절히 바란다 고 적으셨습니다. 여기서 공통점이 보이십니까? 예수님이나 성 김대건 신부님이나 지금 잘 먹고, 잘 살자 라는 내용은 없습니다. 그리고 예비자 교리에도 지상에서 마음 편안함을 얻는 것이 행복이다 라는 말도 없습니다. 헌데 우린 똑같은 성경 말씀을 읽고 외우면서도, 알아듣기는 현실에서 복을 얻는 데에만 치중했었던 이유는 뭘까요? 이것이 우리가 빼야 할 쓸데없는 힘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십자가, 성체, 영혼을 구하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는 내가 원하는 욕심과 욕망과 거리가 먼 것들입니다. 하지만 우린 그렇게 알아들었습니다. 분명 배우기는 a라고 배웠지만, 실상 나오는 행동이 b라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나의 욕심으로 점철된, 내가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행복이라고 알아듣는다면 그때부터 여러분은 힘든 삶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그걸 약속하진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물론 기복신앙은 중요합니다. 인간적으로 복 받고 싶지요. 헌데 복을 받는 시기와 장소가 내가 원하는 때가 아닐 경우, 그땐 어떻게 됩니까? 오히려 해야 할 바를 해야 하겠지요. 설사 하기 싫어도 그것을 껴안으며 해야 할 때가 있지요. 그럴 때 참된 복을 받을 수 있는데요. 얼마 전 뉴스에 어떤 경찰이 살인 위험에 처한 시민을 버려둔 사건이 있었습니다 여기애 경찰로 추정되는 누리꾼이 '경찰이라고 내 목숨 바쳐야 하나? 의무감 때문에 인생 종 치고 싶지 않다' 고 하여 댓글창에 시민들의 공분을 샀고 경찰 사이에서도 '부끄럽다'라는 말과 '그걸 견뎌내라고 있는 게 우리의 존재' 라는 글도 있었습니다. 우리 신앙인도 그렇지요. 우리가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요?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귀국하신 지 1년도 못되어 체포되고 순교하신 김대건 신부님의 일생이,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우리가 원하는 모습은 아니었잖습니까? 인간적으로 피하고 싶었지만 그분들이 그렇게 해주셨기에, 우린 다행스럽게 신앙의 자유를 얻어 지금 이렇게 모여 있게 되었는데요.  대단히 이상적으로 보일 지 모르지만 실상은 이렇게 할 때 모두가 살 수 있는 현실이 되는데요.

 사랑하는 이문동 본당 교우 여러분

주님을 잘 아시는지요? 그분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셨는지 체험하셨는지요? 그래서 그 힘이 여러분을 어떻게 충만케 만들어주었는지요? 만약 여기에 대답을 못하신다면 안타깝지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셔야 할 것입니다. 세례 받은 지 오래됐다고, 어떤 단체장을 맡았었다고, 이 대답을 잘하지 못하는 게 현실인 것은 저도 안타깝습니다. 여전히 피하고 싶고, 여전히 뭔가 안 맡고 싶고, 그래서 예년과 다름없는 신앙이요, 인생이라면, 오늘이 그리스도왕 대축일지만 그분은 여전히 내가 원하는 왕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정말 그렇습니까? 예수님은 여러분에게 어떤 분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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