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3주일. 세계 가난한 이의 날
11월 위령성월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날은 죽은 이들을 위한 달은 아니지요. 살아있는 우리가 제대로 죽음을 준비하고 받아들이면서 지금을 잘 살아내는 것이 중요한데요. 여러분은 바쁜 분들입니다. 게다가 여러모로 어렵습니다. 즉 가난한 이들입니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할 수 없는 한계에 봉착해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여러분이 무능력하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 삶의 현실이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현실은 이러하건만,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실을 인정하기 힘들어하는 모습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떡해야 할까요?
지금은 교회 전례력상 연말의 때입니다. 곧 대림절이 오기 때문입니다. 이런 때에는 보통 연말 분위기상 ‘내가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나?’를 따져봅니다. 많은 일들이 있었지요. 우리 맘대로 되지 않는 현실을 살았고요. 원하는 것을 못 이룬 때였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각자가 가진 욕심을 목격했고요. 그것을 어떻게든 분출시키며 얻고자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러면서 이웃의 ‘가난함’을 애써 외면하려 했습니다. 심지어 나조차도 그런 허하고 휑한 가난함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힘이 빠진 것 같은 때입니다. 그래서 희망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런 때에 과연 믿음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습니다. 이제 잠시 그런 절망과 분노를 걷어내고 거품이 꺼진 현실을 봐야겠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예수님은 가난함과 함께 오셨습니다. 구유라는 소,말의 밥통에 뉘여졌습니다. 그곳이 그분이 오셨음을 알리는 표지였습니다. 만약 그분이 부자요, 기득권자며, 힘있는 분으로 오셨다면 처음엔 좋아라 할지 모릅니다. 그분이 가진 것을 나도 얻을 수 있으리라 여겼겠지요. 하지만 우리가 부유한 사람들을 못 만나본 것이 아니지요. 힘 있는 사람들이 어떤 행태를 보여줬는지 모르는 것도 아니지요. 모든 부유한 사람이 그렇지 않다고 할지라도 부유함이 주는 마력은, 심지어 깨끗했던 사람마저 오염시키는 힘을 갖는데요. 이런 때에 주님이 보여주고 가르쳐주신 약속, “내가 너희를 구원하겠다” 는 기억을 다시 떠올리며 그분이 보여주신 삶을 나의 삶으로 치환하여 체험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