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9주간 화요일. 로마 5,12-21; 루카 12,35-38
예전 한국영화인 ‘타짜’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누나 시집갈 돈으로 투전판에 뛰어든 주인공 고니가 잃은 돈을 다시 따려고 편경장이라는 타짜집에서 화투를 배우러 들어갑니다. 편경장은 일단 실력을 보려고 한 번 해보라고 시키지요. 고니가 시범을 보이며 말합니다. ‘화투를 이렇게 섞고요. 하나씩 기리를 하는 거에요’ 그런 모습을 본 편경장이 말합니다. ‘혼자 섞고 혼자 기리하고, 너 혼자 다 헤쳐먹는구나’ 이 대사가 와 닿았던 이유는 가끔 이런 면담을 들을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고해성사 꼭 할 필요가 있을까요? 잘못한 것을 혼자 기도하면서 마음 정리하면 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얼핏 들으면 그럴 듯 해보이지만 잘못은 자기가 저질러놓고, 분명 피해자가 있는데 사과도 안 한 채, 홀로 마음 정리하고 기도한다고, 있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나요? 죄를 진 사람이 용서도 해줍니까?. 용서는 남이 해주어야 상황 정리가 되는 거 아닌가요?
오늘 바오로의 말씀은 죄를 범한 인간의 역사가 어떻게 정리되는 지를 설명합니다. 인간의 대표격인 아담이라는 한 사람의 죄와 불순종으로, 우린 원죄를 가진 죄인이 되었고요. 그로 인해 죽음이라는 벌을 받았습니다. 누구도 죽음에서 예외일 수는 없지요. 헌데 그것을 하느님의 아들이 일부러 사람이 되어 오셔서 풀어주십니다. 죄를 지은 것은 인간이지만 예수님은 하느님께 대한 순종과 의로움과 희생을 통해 죄가 씻어지고, 영원한 생명을 보장받지요. 결국 해결한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닌데요. 가끔 우린 압니다. 자신의 허물, 힘겨움이 자기의 노력만으로 해결된다는 생각 자체가 대단한 자만이고 교만임을 말이죠. 그동안 노력, 안 해 봤습니까? 게으름도 폈지만, 노력 나름 해봤지요. 하지만 한계에 부딪혔잖습니까? 누군가 도와줘야지요. 마치 갑자기 심장마비가 오면 자기 홀로 인공호흡을 할 수 있습니까? 안되지요.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어떤 자세가 필요하겠습니까? 복음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종은 주인을 왜 기다릴까요? 자기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주인이 도와줘야하고, 그분으로 변화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기에 주님을 기다리면서 그분의 은총을 바래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