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28 주간 토요일. 루카 12,8-12
우리는 주일이나 대축일 미사 때마다 사도신경을 외우며 우리의 신앙을 공적으로 고백합니다. 이 신앙 고백을 입으로 말하면서 우리가 몸과 마음으로 밖으로 드러내며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을 드러내는데요. 그런데 그런 고백을 할 때마다 짜릿하십니까? 아니면 그저 그런 시간이니까 따라 하고 있을 뿐입니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께 대한 신앙 고백을 요구하십니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당신이 요구하시는 신앙 고백은, 그저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전인격, 전 존재를 온전히 투신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이 신앙을 그저 마음속에 간직하면서 혼자 잘 지켜가기만 하면 되는 것쯤으로 여기는 분도 계시는 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신앙을 그저 묻어둬야 할 것이 아니라, 공적으로 드러내야 한다고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사실 이 복음이 쓰였을 당시를 생각해 볼 때, 예수님을 ‘그리스도, 주님’ 이라고 고백하는 자체가 목숨을 내놓아야 할 만큼, 굉장히 큰 용기와 희생이 필요했습니다. 만일 여러분에게도 이런 상황이 닥쳤을 때, 목숨을 내놓아야 할 만큼의 어려움이 올 때, 과연 그렇게 드러낼 만한 용기가 있으신지요? 이 질문은 대단히 중요한데요. 왜냐하면 나의 정체를 나 스스로 인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한테 착각하면 안되니까요.
오늘날에도 예수님 당시 상황과 비슷하게 당신을 증언하기 어려워지는 세상입니다. 예전에는 ‘과연 세상에 하느님이 계시는가?’ 에 중점을 뒀다면 지금의 사람들은, ‘그래 하느님이 있다고 치고, 그러면 그분이 나에게 무슨 쓸모가 되고, 얼마나 도움이 되는거야?’ 에 중점을 둡니다. 쓸모와 필요, 효용성에 중점을 두는 행위를 신앙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물건보다 못한데 말이죠. 드러내놓고 신앙을 고백하기를 꺼리는 세상에서, 내가 힘들면 신앙생활을 쉴 수도 있다고 여기는 세상에서, 주님을 안다고 고백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미사중 여러 번 나오는 말씀에서 찾아봐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