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5주간 수요일. 에즈 9,5-9; 루카 9,1-6
교우들과 가끔 면담을 하게되면 저는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자신을 조절하기 위해 평소 어떤 방법을 쓰십니까?’ 저는 자신을 조절하는 방법을 물어봤습니다만, 안타깝게도 들려오는 답변은 이런 식입니다. ‘묵주기도 하고요. 화살기도 하고요.’ 안타깝게도 대다수가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십니다. 묵주기도, 화살기도가 잘못되었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를 든 묵주기도, 화살기도는 지금의 순간을 잘 모면하거나, 또는 평소 원하는 바를 성모님께 중재해달라는 기도지, 자신을 제어하거나 조절하는 용도는 아닙니다. 현실이 이러합니다. 자신을 조절해야 자꾸 범하는 잘못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데 실제로는 방법을 잘 모른다는 현실에 놓여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길을 떠날 때, 아무 것도 가져가지 마라.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곳을 떠날 때까지 머물러라.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너희 발에서 먼지를 털어버려라.” 제자들이 주님께로부터 복음을 선포하는 권한과 병을 고쳐주는 힘을 받고서 사명을 펼치는데 있어서 필요한 여러 사항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즉, 어려움에 처할 때 자신을 조절할, 마치 제갈량이 줬다는 비단주머니처럼 대처방법을 알려주십니다. 즉, 우리에게는 현실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한 대처법과 자신을 조절할 능력을 키우는 것이 관건입니다. 왜냐하면 현실은 내 뜻대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서기 3-400년 경 사막의 교부인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는 수행생활의 가르침인 프락티코스를 통해서 자신을 조절하는 방법을 설명합니다. 예를 들면 ‘슬픔은 갈망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데서 오는 것이기에 분노를 유발하므로 이런 감정에 휩싸이게 놔두면 정신이 뺏기게 된다’ ‘교만함은 영혼을 가장 심한 타락으로 이끄는데 자신이 행한 선행을 남이 안 알아주면, 남들을 어리석은 자로 여기며 거만을 떨게된다. 그대 자신을 살펴라. 이는 기도할 때 늘 걸림돌이 되는 것을 알기 위함이다’ 등이 나옵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세상 것을 이용하되, 거기에 붙잡히지 않아야 하는데요. 나를 알아야 세상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어떤 조절방법을 사용하십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