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6주일.

2021. 9. 25. 오후 9:4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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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26주일. 민수 11,25-29; 야고 5,1-6; 마르 9,38-48

 요새 유행하는 트랜드가 보이십니까? 그럼 여러분은 센스있는 분일겁니다. 요사이 유행하는 경향, 요새 사람들이 하는 게 뭔지 알면 돈 벌기도 수월할 것이구요. 남보다 앞서 갈 수 있겠지요. 마찬가지로 우리 신앙인들도 요새 사람들의 경향을 잘 살펴야 합니다. 우린 사람들의 영혼을 관찰하는 사람이니까요. 그런 경향을 살필 때, 난 편향적이지 않은 균형잡힌 사람이 될 수 있는데요. 요새 경향 중 하나가 독식(獨食)주의 일 겁니다. 독식주의란 뭘까요? 쉽게 말해 나의 것을 나만의 것으로 간직하려는 경향입니다. 이건 내가 생각한 한계에 스스로 갇히길 원하는 것일 수 있고요. 내가 익힌 것을 나만의 것으로 돌리는 경향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왜 문제랄 수 있을까요? 왜냐하면 처음부터 내 것은 아닌 데, 내 것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요새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하기 쉽지요. 돈을 냈기에 내꺼구요. 노력했기에 내꺼구요. 내가 회사를 세웠기에 사원들도 내맘대로 여길 수 있다고 여기구요. 심지어 이문동 성당도 내가 활동하고 있기에 내꺼, 내 맘대로 움직여져야 한다고 여깁니다. 헌데 정말 그렇습니까? 여기서 오늘 들었던 말씀을 보지요.

 1독서에서 주님의 영이 사람들에게 내려옵니다. 그러면서 예언을 합니다. 그러자 여호수아가 말하죠. 저의 주인이신 모세님, 그들을 말리셔야 합니다.” 그러자 모세가 답을 하지요. 너는 나를 생각하여 시기하는 것이냐? 차라리 주님의 온 백성이 예언자였으면 좋겠다.” 주님의 영이 여러 사람에게서 넘쳐나는데 여호수아는 그걸 말립니다. 복음도 그렇습니다. 스승님,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보았는데, 우릴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 막으려고 하였습니다.” 하자. 예수님은 막지마라. 우릴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릴 지지하는 사람이다.” 물론 당시엔 이를 잡아줄 만한 교회의 가르침, 판단하는 기관이 없었기에 자유로움 속에서 허락하신 것이지만 한편으로 이런 쪽의 힘이 너무 세지면 독식주의, 편향주의로 흐를 수 있지요. 우린 경계해야 합니다. 내 생각대로 보려는 자세, 그것이 우릴 죽일 수 있습니다. 그동안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왔지요. 산의 계곡이나 해변은 하느님이 만드셨는데, 거기에 천막치고 놀려는 사람들에게 자릿세를 받아내고요. 자기도 누군가에게 좋은 가르침을 받았으면서 오히려 더 높은 금액을 제시하며 잇속을 챙기려 듭니다. 만약 이런 논리를 저 같은 신부에게 도입한다면 저는 강론을 하면 안됩니다. 하더라도 정말 중요한 것은 안 가르쳐줘야 하겠지요. 왜냐면 내꺼니까요. 주님께로부터 공짜로 받았더라도 이건 영업비밀이니까, 시덥잖은 것만 말씀드리고 깨달은 정말 좋은 것은 쉽게 내주면 안되겠지요. 사회적 방식으로는 말입니다. 물론 저희는 그런 데에 관심없지만요. 그동안 신앙인들은 보통 사회 사람들과 다르게 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대조사회라고 말하지요. 사람이 모여있지만 보통 사람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생활한다고 대조사회라 불렀습니다. 그런데 교우들중에는 세례를 받았음에도 마인드가 여전히 사회인 마인드에 갇힌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안 믿는 사람들의 트랜드를 따라 살려고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독식주의, 편향주의에 같이 따라갑니다. 의견충돌이 일면,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요. 그저 내 말만 늘어놓습니다. 왜냐하면 난 내가 원하는 것을 따내야 하니까. 양보하고 남의 말을 들어주면 밀리고 지는 것이란 판단을 하니까요. 당연히 점점 답정너가 됩니다. 답은 미리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하면 된다는 태도. 안 믿는 사람들과 똑같아져 버립니다. 그리고 그게 뭐가 잘못됐는지 생각조차 못하고 굳어져버립니다. 당연히 사회의 변화,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합니다. 왜 우리가 해외에 유학을 가고 여행을 갔습니까? 그렇지요. 견문이 넓어지고, 식견이 풍부해지니까요. 아무리 여행가기 힘든 세상이라지만 인터넷으로 모니터 앞에서 다 하려고 듭니다. 그래서 여쭙습니다. 여러분은 예전보다 훨씬 풍족해지셨습니까?

 사랑하는 이문동 본당 교우 여러분

하느님은 우리에게 자유와 한계없는 사랑을 주셨는데, 우린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극단적으로 치닫고, 결국 남을 배척하는 좁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미 우린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방식이 싫어서 주님을 십자가에 매달았던 역사적 사실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계속 내 방식대로 살아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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