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5주간 월요일
‘열려있는 사람일 때 그때가 온 것을 알아볼 수 있다’ 는 말이 있지요. 마치 이 사람이 진정한 선생님인지 아닌지는 배우는 사람이 잘 준비가 되어 있을 때 비로소 선생님을 알아보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오늘 독서는 키루스 왕의 칙령으로 기원전 538년에 바빌론 귀양에서 풀려나 고향에 가게 된 계기를 보여줍니다. 얼마나 좋을까요?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됐으니까요. 비록 자기네 노력으로 이뤄진 귀환은 아니지만 신앙인인 그들의 눈으로 볼 때 하느님께서 키루스 왕의 마음을 움직이셨기에 가능했다는 체험을 남기고 있습니다.
주님의 빛을 받은 이라면 자신을 소중하게 대할 것입니다. 자신을 통해서 하느님의 뜻이 이뤄지니까요. 하지만 ‘이건 아닌 것 같애’ 라는 나만의 필터링을 거친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보면 그것이 주님의 뜻하심인지 아닌 지 알아차리지 못하는데요. 그렇게 알아차리지 못하면 이런 현상이 빚어집니다.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 벽 하나를 붙잡고 지금도 기도하지요. ‘구세주를 보내달라’ 고요. 하지만 구세주는 이미 오셨지요. 헌데 그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런 예수님같은 분 말고요. 우리가 바라는 구세주요~’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줄로 여기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는 말씀만 놓고보면 대단한 매정한 말씀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여기엔 이런 뜻이 있습니다.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내가 그나마 가진 것을 하찮게 보잘 것 없게 여기고 처리할 것입니다. 마치 하느님의 구원방식이 남의 나라 왕 키루스의 마음을 움직여 해방되고, 예수님이라는 평범하게 보이는 분에 의해 십자가를 통해 구원이 이뤄지고요. 게다가 ‘나’라는 사람도 그리 잘생기지도, 능력이 많지도 않음을 한탄하면서 허송세월 날짜만 보낸다면 어찌 될까요? 비록 인간적으로 썩 내키지 않더라도 지금의 것을 받아들이며 뭔가를 시작한다면 달라질텐데요. 가진 것이 있었음에도 이를 무시한 사람은 결국 빼앗긴다는 말을 들으며, 지금의 현실이 불만족스럽더라도 모든 것이 여기서부터 시작됨을 알고 받아들여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