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3주간 화요일. 콜로 2,6-15; 루카 6,12-19
오늘같이 예수님께서 12제자를 부르신 장면을 보면 예전 이런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예수님 혼자 다 하시면 되지, 굳이 말도 잘 못 알아듣는 이들을 뽑아 세운 이유는 뭘까?’ 라고요. 사실 그렇잖습니까? 제자들이 빠릇빠릇하게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구요. 주님의 의도를 잘 헤아린 것도 아니구요. 그렇다고 실천력이 좋았던 것도 아닌 어찌보면 문제아 투성이인데요. 하지만 점차 이런 것도 보입니다. ‘이들에게 기회를 주려 하셨음’ 을요. 그 기회는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그분의 마음을 이해하며, 하느님의 사업에 동참할 때 그제서야 알게 되는 체험과 기쁨이 뭔지 알게 하시려는 의도를 말입니다.
여기 있는 우리도 이미 그 맛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알았습니다. 단체장도 해보고, 구역장, 사목위원도 해보며 신부님 곁에서 교회가 뭐하는 곳인지, 어떤 과정을 통해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지를요. 그러면서 해당된 법과 규칙이 없다면 응용하거나 새로이 만들면서 복음을 전하고, 사랑을 전달하는 방법이 단지 규정에만 메여있지 않다는 것을요. 초월적으로, 감히 세상이 못하는 일을 교회가 해나갈 때 얻는 기쁨과 보람이 뭔지를 말입니다. 그러면서 신부님, 수녀님, 주교님들의 고민과 애환을 공감하며 내 위치에서 어떻게 도와드려야 할지 같이 고민하고 방법을 찾으며, 사랑이 뻗어나가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경험했음을 말이지요. 그러면서도 쉽게 지치기도 했습니다. 빨리 지금 임기가 끝났으면 하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우린 무엇이 필요할까요?
사도들이 현실에서 항상 성공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교회에서 하는 일이 언제나 보람만 가득하진 않았습니다. 그래서 기쁨보다는 ‘부담감’ 이 교우들의 귀에 더 잘 들어갔고요. 임기 동안 얻은 보람보다 ‘힘들다’ 라는 말이 교우들을 더 불안하게 만들어, 그 자리를 피해왔기에 임원을 돌아가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하는 사람만 일했었다는 문제점을 낳기도 하였습니다. 독서처럼 “가르침을 받은 대로 그분 안에 뿌리를 내려 자신을 굳건히 세우고 믿음 안에 튼튼히 자리를 잡으십시오. 그리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게 하십시오” 처럼 그간 생긴 여러 문제점을 알았다면 다시금 깨우쳐 서로를 독려해나가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