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9주간 월요일. 신명 10,12-22; 마태 17,22-27
지금처럼 어려운 때에 사람들은 쉽게 걱정을 합니다. 하지만 걱정만 한다고 해결되지만도 않지요. 그러면 어찌하면 좋을까요? 예전 원주교구에서 지학순 주교님과 같이 민주화 운동을 했던 장일순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그에게 식당하는 어떤 자매가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장사가 잘 안된다’ 고요. 그러자 그는 이런 말을 합니다. ‘이보게~ 누가 하느님인가? 거지에게는 행인이, 장사꾼에게는 손님이 하느님이지. 그런 줄 알고 손님을 하느님처럼 잘 모시라고. 누가 자네에게 밥을 주고, 입을 옷을 주는 지 잘 보라고. 자네 집에 밥 잡수시러 오시는 분들이 자네의 하느님이야. 그런 줄 알고 진짜 하느님이 오신 것처럼 요리를 해서 대접을 해야 돼. 장사 안되면 어떻게 하나? 그런 생각은 일절 할 필요가 없어. 하느님만 섬기면 하느님들이 다 알아서 먹여주신다 이 말이야.’ 그렇지요. 학교 선생님들에게 하느님이 누굽니까? 학생이지요. 공무원에게는 주민들이 하느님이고요. 신부에게는 신자들이 하느님이고요.
오늘 말씀은 단순하게 ‘하느님을 잘 섬기라’ 는 말로만 듣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렇게만 듣게 되면 와닿지 않고 어렵게만 느낄 수 있겠지요. 하지만 좀 넓게 들여다보면 이런 말씀도 들어 있습니다. “보라, 하늘과 하늘 위에 하늘, 그리고 땅과 그 안에 모든 것이 주 너희 하느님의 것이다.” 이 세상 만물이 하느님의 기운을 갖고 있지요. 그 하느님이 어떠하신지 독서에 잘 나와있습니다. “차별하지 않으시고, 뇌물받지 않으시고, 고아와 과부의 권리를 찾아주고, 이방인을 사랑하고 음식과 옷을 주시는 분”으로요. 우리가 하느님께 생명을 받아 고맙게도 이렇게 살고 있고요. 배운 것을 홀로 갖지 않고 남에게도 좋은 것을 나눕니다. 예수님도 일부러 남의 비위를 상하게 하지 않으시려, 물고기를 잡게 하여 없는 살림에 세금도 내주십니다.
주님에게서 우린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손해를 보는 것처럼 여길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 안에서 더 많은 것을 얻게 해주시는 은총의 허락하심은 과연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알려주시는데요. 세상이 이렇더라도 가슴 따스한 삶이 되길 빌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