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4주간 화요일.

2021. 7. 5. 오후 10:5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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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14주간 화요일. 창세 32,23-33; 마태 9,32-38

 여러분은 이 말이 어떻게 다가옵니까? 천주교는 다른 곳보다 점잖은 종교다

칭찬으로 들리십니까? 클래식한 고전적이라는 뜻일까요? 아니면 활력이 떨어진다는 말일까요? 요새 저는 구역장, 반장님들을 위한 교리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달에는 교회론을 수업할 예정입니다. 헌데 그냥 막연히 교회가 어떤 곳인지를 가르친다면 단순히 교계제도를 알린다거나 교회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를 설명하겠지요. 그러면 이미 몇 십년간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에게 와닿지 않을 것 같아서 좀 시각을 달리해보려 합니다. 신천지나 하나님의 교회 등 신흥종교집단에 사람이 왜 몰려드는지, 그곳 신자들이 지식 수준이 낮은 것도 아닌데, 게다가 천주교 신자들도 그걸 알면서도 빠져드는 이유를 살펴보면서 제가 믿는 천주교를 보고 있자니, 제 마음이 다시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기는 점잖은 곳이 아니어야 했습니다. 당신의 가르침으로 살아야 하는 곳이기에 오히려 성령의 은총으로 펄펄 뛰는 곳이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걸 모르는 사람들은 잘 살펴보지도 않고, 막연히 그들을 폄하하면서 이단이라고만 몰아대지요. 자기 신앙이 어디가 결핍되었는지 모르면서 조용한게 좋은 것이라고 착각하면서 말이지요. 그러며 현실 안주에 힘쓰지요. 우리가 그들보다 무엇이 나을까요?

 오늘 독서와 복음 말씀이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주셨다 는 엄청난 활력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말씀이고요. 독서의 야곱은 저에게 축복을 주시지 않으면 놓아드리지 않겠습니다.” 라며 매달립니다. 다들 죽기 살기로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들으시면서 무언가 떠오르지 않습니까? 나는 그동안 너무 무미 건조했었구나... 점잖고 조용한 신앙이 품위있는줄 알았었구나 오히려 실천 없는 머리로만의 신앙을 추구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라고요. 물론 이단들의 문제는 많습니다. 자기네가 원하는 한편으로만 추구했고요. 그러기에 원래 주님의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갔습니다. 하지만 교주(敎主)라 불리는 이들의 삶의 초기 형태를 보면 불우한 와중에서 하느님의 말씀에서 방법을 찾으려는 치열함 또한 엿보입니다. 그들을 변호할 마음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서도 배울 점은 있습니다. 바로 말씀대로 살려는 자세입니다. 균형감 있는 열정에서 실천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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