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3주간 수요일

2021. 7. 1. 오전 5:3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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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13주간 수요일

 자기만 보려는 세상에서 우리에게 부족한 능력이 있다면 상대방을 알아볼 줄 아는 능력일 것입니다. 그 사람 안에 있는 것을 봐 주는 능력은 상대방을 인정하고, 길러주고, 키워줄 텐데요. 어제 베드로가 예수님을 보고서 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라며 고백을 합니다. 성령이 도와주셨지만 그 나름 주님을 알아보았다는 뜻이겠지요. 오늘은 마귀가 주님을 고백합니다. 하느님의 아드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발언이 꽤나 도전적이면서 버릇없지만 여기서 하느님의 아드님 이라고 고백한 것은 분명합니다. 여기서 이런 질문이 던져집니다. 나는 내가 믿고 있는 예수님을 참다운 주님이요, 구세주라 부르며 매달리는가?’ 라고요. 어쩌면 너무 당연하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당연하다는 생각에는 이런 것이 숨어있습니다. 실상 현실에선 우리가 주님께 그렇게 절실하게만 매달리지 않았다는 무덤덤함이 있고요. ‘당신의 은총이 저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라는 간절함이 부족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른바 차가운 가슴이 느껴집니다. 사랑의 종교가 2천년이 지나면서, 이곳이 주님께서 세우신 초기 교회의 모습을 유지하고 잘 관리되길 바라는 마음에, 교회에도 규칙이 생기고 법을 만들었지만 어떤 때에는 너무 제도화된, 시스템화된 종교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너무 이성적으로만 바라보다보니 마치 차가운 냉랭한 느낌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우리의 상태를 봐야 하는데요.

 누군가를 칭송하고, 인정하고, 사랑하려면 그만큼 평소 관심어린 사랑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에 대해서도, 사랑에 대해서도, 있는 그대로로 봐 줄줄 아는 그런 고백이 나와야 하겠습니다. ‘하느님은 제게 이러저러한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을 가지시며 제가 가지지 못한 부족한 점을 바라보게 해주셨기에 그것을 잘 채워달라는 기도와 더불어 이웃이나 가족들에게는 당신은 이런 것들을 참 잘하시는군요라며 인정하는 자세 말입니다. 이런 고백을 해주며 서로를 살려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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