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2주간 토요일. 창세 18,1-15; 마태 8,5-17
한 사람을 만나면서 여러분이 그 사람을 ‘신뢰할 수 있는 기준’ 이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요? 뭘 보고 그 사람이 ‘믿을 만한 사람’ 이라는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요? 일단 방법이 없진 않습니다. 예를 들자면 일을 시켜보며 그걸 처리 방식을 볼 수 있고요. 큰 돈을 주면서 그걸 어떻게 하나? 볼 수 있고요. 일부러 흐트러지기 쉬운 술자리에 데려가 어떻게 노는 지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 갖고는 부족합니다. 어떤 사람은 범죄를 저질러 놓고 거짓말 탐지기에 아무 것도 안 나오는 사람도 가끔 있고요. 몇 십년을 친구처럼 지냈지만 어느샌가 뒤통수 맞는 경험도 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무슨 기준으로 그 사람을 믿고 있습니까? 기준이란게 있긴 한 것일까요?
오늘 말씀은 믿음으로 가는 길이 얼마나 어렵고 쉽지 않은 지, 하지만 믿는 이에겐 또 얼마나 쉬운 지를 보여줍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주님의 사람에게서 ‘아이를 가질 것’ 이라는 말을 듣지만 어이없는 쓴웃음을 짓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자기가 살아온 경험치로 볼 때 ‘말도 안된다’ 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복음에는 백인대장이 “그저 한 말씀만 해주십시오” 라며 완전히 내어 맡김의 믿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을 보며 여러분은 어느 선상에 와 있습니까?
쉽지 않은 말이지만 신앙과 불신앙의 길은 마치 물길을 걸어가는 느낌일 수 있습니다. 물이 얼마나 깊은 지 눈으로 보이긴 합니다. 하지만 물 때문에 ‘착시 현상’ 을 일으킬 수 있지요. 왜냐하면 물은 ‘빛의 굴절 현상’ 때문에 눈으로 보기에는 수심이 얕게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걸 무시하고 들어가다가 갑자기 예상보다 깊은 것을 알고서 당황한 기억이 있으실 겁니다. 그렇습니다. 눈의 시각만으로는 감지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밟는 발로 천천히 느끼면서 갈 때 그나마 상황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우린 머리로 생각한 것에 맡기는 삶이 아니라, 몸을 통해 체험의 맛을 느낄 때 감각을 너머서는 영역이 있음을 그제서야 실감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그런 영역입니다. 가진 감각만으로는 불가능한 영역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때, 감각을 떠나는 연습을 해볼 때 믿음이 뭔지도 알아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