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8주간 금요일. 집회 44,1,9-13; 마르 11,11-25
예전에 이런 노래가 있었습니다. ‘안되는 줄 알면서 왜 그랬을까?’ 쿨 시스터즈란 가수의 ‘왜 그랬을까?’ 라는 노래가사인데요. 사실 이 노래의 가사는 후회 막심하다는 내용들로 가득합니다. 허나 오늘 예수님은 일부러 작정하시고 이런 행동을 하시는 듯 여겨집니다. 무화과 철도 아닌데 잎이 무성한 무화과 나무에 저주를 퍼붓고요. 예루살렘 성전 근처에서는 남이 장사하는 곳에 가셔서 장사를 다 엎어버리십니다. 순간 이게 뭔가? 싶습니다. 예수님도 이미 아셨습니다. 당신의 구원 사업이 사람들 눈에 보기에는 당장 실패로 끝난 것처럼 보이고, 사람들도 좋아하지 않을 것을요. 여러분이 오신 성당에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이 그것도 중앙에 모셔져 있습니다. 솔직히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실패자의 모습이요, 사형수의 모습이지만 나중에야 알게 되지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저 방법밖에 없었다는 사실을요. 그제서야 영원한 생명을 얻는 자기 희생의 방식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깨닫는데요. 허나 그 당시는 몰랐습니다. 지금 당장에는 그럴 듯하고, 좋아보이고, 있는 것만 찾으려 들지만, 오히려 그 모습의 실상은 속은 이미 곪아 들었고요. 정신상태는 썩어빠진 사태를 보곤 하는데요.
독서의 집회서 시작처럼 “훌륭한 사람들과 역대 선조들을 칭송하자” 라며 시작되지만 이미 그들 중 어떤 이는 기억에서 사라진 사람들이 있는 반면 또 누군가는 “의로운 행적이 잊히지 않았다.” 며 그들의 의로움이 어렵게 얻어진 것임을 짐작케 해주는데요.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칭찬을 받으려고 사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믿으며 욕먹을 각오로 일을 할 때, 당장의 고통은 받겠지만 그 믿음이 결국 어디로 이끌어주는가?를 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끔 우린 충격요법 같은, 의도가 다분히 깔린 일부러 하는 행동을 경험하곤 합니다. 그로인한 불편함이 오히려 내가 가려는 길을 제대로 인도해주는 것을 보기도 하는데요. 우리가 그동안 여겨왔던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아는 눈을 뜨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