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2주간 목요일.

2021. 4. 14. 오후 11:4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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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2주간 목요일. 사도 5,27-33; 요한 3,31-36

 요새 계속되는 요한복음의 성령 이야기를 들으시면서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예전 미국 어떤 사람이 동양사상에 대한 논문을 쓴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내용상으로 그리 대단치 않은 내용이었습니다. 우리 같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내용이었는데 저자인 당사자는 마치 대단한 것을 발견한 것인 양 여기고 있었습니다. 이게 왜 그럴까? 봤더니 우리야 한국 사람으로서 중국과 한국의 역사적 배경을 어느 정도 꿰고 있고요. 그동안 시대의 과정을 통해 배우고 알고 있었기에, 마치 술자리에서 나눌 법한 대화 수준의 정도인 역사 이야기를 그리 대단하게 여기지 않고 자연스럽게 나누지만, 그런 배경 지식이 없는 그들에겐 마치 신천지를 만난 것처럼 떠들고 있었는데요.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잘 모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닐까? 역사가 짧아서? 철학적 바탕이 별로 없어서 말이죠.

 오늘 나오고 있는 복음에서 주님이 주시는 성령과 영원한 생명의 바탕이 되는 선지식이 우리에게 얼마나 있을까?’ 여겨보게 됩니다. 당연히 잘 모르면 재미없고요. 설사 좀 들었다 하더라도 상관관계를 따져 묻지 않으면 그렇게 깊숙이 알려고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냥 그런 게 있는가 보다 수준이지요.

 100년 경에 쓰인 요한복음이 있기 전, 서기 70~80년 경에 쓰인 사도행전에 보면, 17장에 바오로 사도가 아레오파고스 연설에서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 철학자들과 토론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스토아학파 철학자들은 신을 믿긴 했습니다. 하지만 철학적 신이었지요. 그래서 그들이 말하는 신은 인격적 신이 아닙니다. 그저 세계 전체를 관장하는 신이지요. 그래서 이성에 근거한 무신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에피쿠로스 학파의 신은, 마치 그리스 신화의 신처럼 인간과 어떤 관계도 맺지 않습니다. 인간이 죽어 그 신들이 사는 세계로 갈 수 없습니다. 그저 인간들은 현세의 삶의 행복과 만족을 누리는 게 중요하지요. 그래서 실용적인 무신론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그들의 배경을 알기에 여기에 바오로 사도는 그가 배운 율법과, 체험하고 얻은 믿음으로 이들을 상대합니다. 모든 이에게 생명과 호흡을 주시는 분 이라고요. 그렇게 설명한 바오로에 의해 인간 영혼에 대해 희미하게 알던 그들에게 분명한 결단을 내릴 수 있게 바꿔놓았고요. 신을 믿기 어려워하고 거부하던 이들에게, 신은 인간의 역사에 개입한다는 것을 알렸는데요. 그렇게 그 당시 사람들이 여겼던 상황을 알 때, 어렵게만 보이는 복음 말씀도 조금씩 이해가 될 수 있는데요

 이제 내가 믿는 주님은, 내가 사는 역사의 바탕 안에서 어떻게 배우고 체험한 하느님인가? 를 여러분도 설명할 줄 아셔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여러분만의 언어로 잡아낼 때, 살아있는 증언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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