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4주일. 역대하 36,14-23; 에페 2,4-10; 요한 3,14-21
유명한 베르디 오페라 ‘나부코’에는 우리가 잘 아는 노래가 나옵니다. 제목은 ‘히브리 노예의 합창’입니다. 멜로디가 이러한데요~ ‘ 𝅘𝅥𝅯~~ 𝇑 ’ 나부코는 성경의 나오는 지금의 이라크 지역, 바빌론의 왕 ‘네브카드네자르 2세’를 가리키는데요. 이탈리아어로 줄여서 표기한 이름이 ‘나부코’입니다. 때는 기원전 605년경 바빌론 왕이 예루살렘을 침공합니다. 이 때 많은 유대인들이 포로로 끌려가면서 나라 잃은 슬픔과 노예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자신들의 비참함을 표현한 노래가 시편 137편이구요. 여기에 작곡가 베르디는 당시 이탈리아가 오스트리아에 의해 침공을 받은 처지가 유대인들이 받았던 고통과 비슷하다고 여겨 이 작품을 만들었는데요.
이스라엘 사람들이 침공을 받았으니 해방을 원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방이 되었을까요? 그들이 독립운동을 펴서 성공했을까요? 아닙니다. 어이없게도, 믿기지 않지만, 오늘 독서 마지막에 나오는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 옛날 성경 번역으로는 고레스 임금이 기원전 538년경 칙령을 베풀면서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사람들을 풀어주는 유화정책으로 풀려납니다. 그야말로 자신들이 노력해서 얻은 해방이 아니라 식민지 왕이 마음을 돌렸기에 가능했던 해방을,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이방인 임금의 마음을 움직여주신 것에 감사하는데요. 그야말로 그냥 얻어진, 뜻밖의 감사함입니다. 그럼 이 감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답을 굳이 내자면, 그냥 감사하게 받으면 됩니다.
사실 사랑이라는 것이 그렇지요. 꼭 이유가 있어서, 조건이 맞아서, 거래가 성사되어서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크면 몸이 움직이고요. 마음에 꼭 들지 않더라도 무언가를 해줍니다. 설사 키루스 임금이 계산적인 바탕이 깔려 있었다 하더라도, 이스라엘 사람들에겐 당장 고향으로 갈 수 있었으니 다행스런 일이었겠구요. 2독서 말씀처럼 “이는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신앙은, 우리가 주님을 사랑해서 얻어낸 구원이 아니라, 당신께서 우리를 더 사랑해주셨기에 선사하신 선물이라면 그 사랑을 예전과 좀 다르게 봐야 할텐데요. 모든 것이 계산적인 시대에서 남들과 다르게 사랑하시는 주님을 뵈오며 남은 사순을 감사하게 보내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