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1주 토요일.

2021. 2. 26. 오후 9:3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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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1주 토요일. 신명 28,16-19; 마태 5,43-48

 제가 맡은 일 중에 하나가 혼인에 관한 교리, 면담, 관면혼과 혼인미사까지를 담당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여러분들이 잘 모르실 수 있는 교회법전에 근거한 혼인법을 다룹니다. 사실 여러분들이 잘 모르실 수 있습니다. 교회법의 대부분은 교회의 운영에 대한 문제을 다루지만 유독 평신도의 경우에 해당되는 것은 혼인법인데요. 왜 교회는 혼인법을 만들어서 시행할까요? 정작 신부님, 수녀님들은 결혼생활도 안 하는데 말이죠. 간단히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성장한 남녀가 만나서 결혼해 잘 살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당연히 법도 필요없지요. 하지만 세상의 역사를 지켜본 교회는 그동안 수많은 커플들을 보아왔습니다. 그 안에는 잘 사는 부부도 있지만 그와 반대로 이혼, 불륜, 아이를 버리는 영아 유기 등. 지금도 자행되는 사건이 예전에도 있었습니다. 천주교는 예로부터 하느님이 맺어준 부부가 하느님 뜻대로 잘 살기를 가르쳐왔지만 실제로는 그와 어긋나는 사태를 지켜보면서 어쩔 수 없는 개입이 필요했기에 생겨난 것인데요. 얘기가 길어졌습니다만 오늘 말씀은 가장 기본의 정신을 일깨워 줍니다.

 독서에는 오늘 주 너희 하느님께서 이 규정들과 법규들을 실천하라고 너희에게 명령하신다.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그것들을 명심하여 실천해야 한다.” 복음은 십계명의 기본정신 중 이웃사랑에 관한 실제적인 문제를 가르치십니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많은 분들이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 교회에 찾아오십니다. 하지만 정작 그 평안함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건 바로 이곳이 가르치는 가장 기본적인 시스템의 법칙을 알아듣지 못하거나 또는 자기 방식대로 하려들기에 엉키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서 모든 것에는 순서와 법칙과 단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무시하고 자기 방식대로만 하려들면 이곳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지요. 당연히 먼 길 돌아가는 느낌이 듭니다.

 며칠 전 혼인에 관해 오신 두 분의 사례가 생각납니다. 한 분은 혼인 면담을 하러 왔고요. 한 분은 자기 아들의 혼배를 위해 대신 서류를 내셨습니다. 아들의 혼배를 위해 서류를 내신 분은 교적이 이곳 교우가 아니었기에 해드릴 수 없었구요. 혼인 면담을 하던 교우는 면담을 다 하더니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게 그냥 형식적인 면담이 아니군요. 신앙생활을 위해 필요한 것이군요~’ 모르면 어긋난 행동을 하고요. 그저 형식적이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알면 다르지요. 우리가 아는 주님의 정의와 사랑의 의도는 대단히 구체적이셨고요. 그렇게 구원을 이루셨고요. 그로인해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기본을 통해 실생활을 구현해 나가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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