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스콜라스티카 동정 기념일

2021. 2. 9. 오후 10: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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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스콜라스티카 동정 기념일. 창세 2,4-17; 마르 7,14-23

 우리의 관심은 어디에 가 있습니까? 내 영혼에 관심이 있습니까? 그 영혼을 어찌 관리하십니까? 이젠 사정이 달라진 듯 합니다. 이른바 미래의 교회를 짊어질 친구들이 나오질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요새 사정이 그렇습니다. 출산율도 낮고요. 20-30대 당사자도 원치 않고, 그 나이대 자녀를 둔 부모님들도 교회의 삶을 선택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물론 신학교에 들어가는 일반인들이 있긴 하지만 그것도 본당, 교구청, 교회 기관에서 월급 받으며 일하는, 이른바 취업 시장으로 바라봅니다. 교회를 위해 일하기보다는, 교회를 통해 자신의 무언가를 얻으려 듭니다. 여기서 사용하긴 싫지만 이용이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누리려고 이용하면서, 그에 반해 손해는 보고 싶지 않다는 논리가 깔려 있습니다. 게다가 열심한 부모에게서 자란 자녀들이 자신도 커서 아이를 낳았지만, 그 아이들에게 신앙의 소중함을 교육하지 않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니 아이들도 신앙의 소중함보다는 다른 곳에 관심이 가 있습니다. 주위에 그럴싸한 것들, 남들 따라 하는 것들에 말입니다.

 제가 일부러 차갑고 싸늘하게 말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 삶은 절제하고, 기다리면서 참다운 것을 얻는 차원의 삶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당장 보기에는 더디 느껴지고, 느리게 보이고, 한심스럽게 여겨질 수 있습니다. 이런 시각이라면 별로 감동적으로 다가오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비경제적, 비과학적이라 여길 것입니다. 이런 때에 오늘 기념일을 맞이한 동정 성녀 스콜라스티카를 바라봅니다. 그녀가 살아있다면 과연 우리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주었을까요?

 평소 그녀의 말을 빌려본다면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을 더 많이 사랑했기에, 사랑했던 주님에게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고요. 주님을 사랑하면서 그녀는 무얼 얻었을까요? 오늘 독서와 복음처럼 하느님은 많은 창조물을 만들어주셨지만 사람들은 허락된 것 이외에 것에 관심과 눈길을 주다가, 오히려 가진 것마저 다 잃어버립니다. 그로 인해 악이 들어왔고 자신의 삶을 망칩니다. 누구 탓이 아니지요. 자신을 온전히 지켜내지 못하고 방종(放縱)했기 때문입니다. 그럴싸한 것들에 눈길이 더 갔기 때문입니다. 그에 반해 동정의 삶은, 절제의 삶은 자신을 지키고 절제하며 좀 부족하게 여겨지지만 오히려 부족함을 통해 불필요한 것에서 해방됩니다. 다 가질 수 없는 세상에서, 더 가지려 드는 사람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무엇으로 인해 우리가 깨끗해지고, 무엇으로 인해 우리가 더럽혀지는지를 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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