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주간 토요일. 히브 11,1-19; 마르 4,35-41
불안한 시대를 살면서 ‘주식 광풍’을 맞이한 때에 예전 알고지낸 30대 청년도 여기에 합류했다가 8천만원을 손해봤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건실했었고, 성실한 직장생활을 했었는데 귀가 얇아진 탓인지 그랬다 하더군요. 사실 사람이 사는데 제일 힘들어 하는 것이 불안함과 불투명입니다. 그러기에 허우적거리며 온갖 시도를 한다지만 더 늪으로 빠지는 형상을 보면서 우린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여기서 외줄타기 하는 서커스인의 인터뷰를 소개할까 합니다. 기자가 묻습니다. ‘아무 것도 없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외줄타는 것이 신기한데요. 줄이 흔들리는데 불안하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는 답합니다. ‘줄이 흔들려야 한발자국씩 내딛을 수 있습니다. 흔들리는 반동을 이용하여 무게 중심을 잡아야 하지요. 저는 줄이 잘 묶여있다는 것을 믿고 있기에 할 수 있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흔들리는 줄만 쳐다보지만 그는 줄이 잘 묶여있다는 것을 믿기에 흔들림 속에서도 자신의 중심을 지키며 한발자국씩 갈 수 있었는데요.
오늘 예수님은 겁에 질린 제자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 며 오히려 반문하십니다. 이 내용을 보며 우린 쉽사리 ‘겁내는 게 당연한 거 아냐?’ 라고 항변할만도 합니다만 아직 제자들은 같이 있는 예수님이 진정 어떤 분인지 몰랐기에 이런 반응을 보일 뿐입니다. 독서도 그렇습니다. 그동안 하느님을 믿었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하지만 진정한 믿음을 가진 이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얄팍한 믿음을 가진 이들이 자신의 생각이 더 지혜로운 것인양 떠들었기에, 교회 안에서 분란을 조장하며 나머지 신자들을 혼란하게 만드는데요. 이런 경우의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인지 묵묵히 한땀 한땀 바느질을 하는 장인정신 같은 신앙인이 대접받지 못하고 무시당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 사실 옛사람들은 믿음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를 들으며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어지러운 시대일수록 우리들 묵묵한 믿음이 결국에는 가치를 발휘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