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3주간 화요일. 스바 3,1-13; 마태 21,28-32
오늘 말씀은 순명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한편으로는 영적진보와 퇴보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자아’를 중시여기는 세상이 되면서 사람들과의 관계가 힘든 세상이 되고 있고요.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기보다는 일단 드는 느낌에 집중하다보면 갑작스럽게 다가온 제안이 어렵게 느낄 수 있는데요. 그로인해 교회에서 청빈, 정결, 순명이라는 복음적 권고 중 하나인 순명을 어렵게 여기는 요즘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성소마저도 포기하는 사태도 발생합니다. 여기서 그리스도교에서 이해하는 인간의 관점 2가지를 소개할까 합니다.
하나는 인간을 영혼과 육체로 보는 그리스 철학에 영향을 받은 이중적 인간관이구요. 다른 하나는 히브리 사고방식에서 영향을 받은 영(pneuma), 혼(psyche), 몸(soma)의 삼중적 인간관입니다. 이 삼중적 인간관이 나오는 첫 문헌은 1테살 5,23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을 온전하고 흠없이 지켜주시길 빕니다.” 라고 나오는데요. 사도 바오로 이후 삼중적 인간관을 선호했고요. 어제 축일인 십자가의 성요한도 하느님의 신비체험을 하면서 필요에 따라 이중적, 삼중적 인간관을 인용했었습니다. 요한의 경우에는 영과 육체 사이에 ‘영혼’ 이 자리하면서 여기에 인간의 영적 특성인 ‘지성’, ‘의지’, ‘자유’가 속한다고 봤고요. 여기에 영혼은 ‘자아’ 라 불릴 수 있는 영역으로서 이 영혼이 인간을 어디로 인도하느냐?에 따라서 영적 진보가 되기도 하고 반대로 영적 퇴보도 일어난다고 봤습니다. 모두가 알 듯이 영적 진보는 피조물에서 이탈해서 하느님께 나아가는 것이구요. 영적 퇴보는 육체적 탐욕, 순명을 거스르며 이기적인 욕심으로 가는 건데요.
여기서 영혼의 3가지라고 일컫는 우리가 지닌 지성과 의지와 자유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상태를 잘 들여다 볼 때 나 자신도 살리고, 만나는 사람들도 도울 수 있는데요. 잘 돌보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