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2주일.

2020. 12. 5. 오전 11:20:40

글자

대림 2주일. 이사야 40,1-11; 2베드 3,8-14; 마르 1,1-8

  우리는 세례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 이름 뒤에 성인의 이름이 붙여집니다. 헌데 세례명을 정할 때 어떻게 하셨습니까? 스탠다드한 정석 방법은 교회가 선정해준 성인전책을 읽고요. 그 사람들 중 본받고 싶은 사람을 골라서 그 성인처럼 살고픈 열망을 가지며 세례명을 정합니다. 하지만 예비자 교리를 십 수년을 해보면서 상황은 이상하게 바뀌어 갑니다. 자기 생일에 맞추거나, 이쁜 이름을 고른다는 것입니다. 이쁜 이름을 고른다는 말은 성인이 어떤 생애를 살았는지 관심이 없다는 말이구요. 자기 생일에 맞춘다는 말은, 성인의 기념일로 지정된 이유를 아는 데는 관심이 없고, 그냥 나하고 날짜만 맞다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는 뜻인데요. 상황이 이렇게 돌아간다면 세례를 받고도 우린 그 성인처럼 살지 않을 겁니다. 성인의 삶을 내 롤모델로 정한 건 아니니까요. 결국 나의 인생은 방향을 잃기가 쉬운데요. 그래서 저는 여러분께 여쭤봅니다. 내가 받은 세례가, 현재 어떤 현실로 이어져 가고 있나요?’

  우리 주위에는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알긴 아는데, 바꾸지 못하는 사람들.변화가 힘겨운 사람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다 아는 것처럼 떠드는 사람들..’ 안타까운 사람들입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헌데 우린 왜 세례를 받았음에도 여전히 예전과 다를 바가 없을까요? 그저 약하기 때문일까요? 왜냐하면 세례를 통해 내 삶이 변화되길 바라는 염원이 부족한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보면 당시 상황이 나와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세례를 받으러 갑니다. 보라 내가 네 앞에 네 사자를 보내니 그가 너의 길을 닦으리라 는 사명을 받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오실 예수님을 준비하면서 요한은 세례를 베풉니다. 여기서 질문을 드려봅니다. 왜 당시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러 갔을까요? 새로워지길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세상이 오길 바랐습니다. 현실의 어려움에서 자기를 구해줄 누군가를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1독서의 이사야서에서 예언되었습니다. 한 소리가 외친다. 너희는 광야에서 주님의 길을 닦아라. 보라 주 하느님께서 권능을 떨치며 오신다.” 이에 요한은 그때가 왔다는 사실을 알리며 세례를 베풀면서 희망을 줍니다.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사실 이사야의 예언과 현실로 이어진 세례자 요한과는 시기적으로 엄청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적으로 지칠 수 있는 시간의 갭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하느님의 시간관념과 우리의 시간관념이 다름을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2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왔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이 한 가지를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 어떤 이들은 미루신다고 생각하지만 주님께서는 약속을 미루지 않으십니다.” 어떻습니다. 인간의 사고방식과 다른 하느님을 보면서 우린 어떤 삶으로 옮겨가야 할까요?

  이제 다시 내가 받은 세례가, 현재 어떤 현실로 이어져 가고 있나요?’ 라는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솔직히 우린 필요해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뭐가 필요해서요? 내가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안된다는 현실 자각에서 말입니다. 그래서 내가 받은 세례 안에는 저는 주님이 필요합니다라는 청원이 들어가 있습니다. 왜 주님이 필요할까요? 이번 코로나 현장을 보면서 그걸 더 느낍니다. 갑작스럽게 현실이 달라졌습니다. 특히 해외 경우에는 예전처럼 살고파서 지침 방역과 상관없이 폭동을 일으킵니다. 그들이 무지몽매하다고 매도하기보다 변화가 두려운 사람임을 알게 됩니다. 그냥 예전처럼 하고 싶고, 지금의 불편함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한다는 것을요. 이번 인권주일, 사회교리주간을 맞이하면서도 느낍니다. 역사적으로 사람을 사람처럼 대우한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다른 나라를 정복하고, 침략하고, 노예로 삼고, 독재를 일삼고, 폭력적으로 대한 사태가 있었습니다. 그래야 발전한다고 여겼으니까요. 하지만 진정 그랬습니까? 이제 다시금 눈을 뜨게 됩니다. 진정 우리가 받은 세례가 어디로 어떻게 흘러야 하는가를요. 바로 하느님 방식, 예수님이 보여준 방식이 답이라는 사실을요. 우리 이름 뒤에 붙여진 성인들이 그렇게 살아주었고요. 이나마 괜찮은 세상이 왔다는 것을요. 물론 아직 완성은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와 후손들의 역할이 더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시작은 세례를 통한 주님의 사람으로 성령의 옷을 입을 때 가능할 수 있고요. 그렇게 받은 세례가 내가 어디로 가야할 지 알려줄 것입니다. 세례의 정신을 잊지 않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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