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0주일.

2020. 10. 24. 오후 4: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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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30주일. 탈출 22,20-26; 1테살 1,5-10; 마태 22,34-40

  요사이 우린 매 미사 전에 가난한 이들을 위한 기도문을 바치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이런 기도문으로 만들어진 염경기도를 바칠 때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형식적인 기도로 이어지기 쉽다는 점입니다. 바쳐야 하니까..하는기도로 전락되기 쉽습니다. 의식하면서 바치는 차원이 아니기에 당연하게 절실함이나 간절함이 떨어지기 쉽습니다. 마치 주님의 기도, 성모송, 묵주기도처럼요. 물론 그 기도문이 그렇게 전락되라고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다만 바치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그렇게 되는 현실이 안타까운건데요. 제가 가난한 이들을 위한 기도를 예로 든 이유를 말씀드리며 강론을 시작할까 합니다. 이 기도문은 주님의 복음을 기쁜소식으로 전하며, 억압받는 이들이 해방을 얻게 하자는 메시지가 담겨있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하느님 나라는 모든 생명이 존중을 받아야 하고요. 사귐, 섬김, 나눔의 공동체를 지향합니다. 이것은 탐욕과 이기주의를 벗어난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인데요. 그렇다면 우리의 밑바닥에 무엇이 깔려있는지부터 바라봐야, 내가 하는 기도가 과연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아니면 말만 그럴듯하게 가난을 부르짖는지 보일텐데요. 왜냐하면 우린 대단히 현실적이기 때문입니다. 입으로는 영원한 하느님을 찾지만, 현실은 내가 사는 지금의 세상에서 온갖 복을 누리길 원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오늘 복음의 시작은 예수님께서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버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로 시작합니다. 아니 당신이 뭘 하셨길래 이런 반응에 놀란 바리사이들이 질문공세를 펴는 것일까요? 먼저 사두가이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일곱 형제가 모두 형수와 살았습니다. 그러면 나중에 이 형수는 누구의 부인이란 것입니까?” 그들은 굉장히 현실적인 사람들입니다. 당시 귀족집단이었거든요. 그래서 자기네가 사는 현실이 바뀌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쭉 기득세력을 누려야 하니까요. 마치 지금의 누구들처럼요. 여기에 예수님은 이런 대답을 하시지요. 하느님은 살아있는 이들의 하느님이다.” 죽은 이들만의 하느님이 아니라, 살아있는 이들의 하느님이시라면 지금 벌어지는 여러 고통과 어려움을 과연 강 건너 불구경처럼 해야 하는가? 라는 말과 비슷하겠지요. 과연 살아있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1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도 한때 이방인이었듯이 어떤 과부나 고아도 억눌러서는 안된다.” 다들 어려운 시절을 겪어봤기에 그들을 외면하면 안된다는 말씀이지요. 2독서는 성령이 주시는 기쁨 을 말하면서 우상을 버리고 주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우상이란, 단지 소의 형상을 빚은 것이 아니지요. 하느님이 원하신 것이 아닌, 물질과 세력의 형성을 따라가면서 여기에 편승하려는 태도라 하겠습니다. 그런 기득권 세력의 가르텔은 자기이득을 놓으려 하지 않기에 오히려 가난하고 힘든 이들을 더 어렵게 만드니까요. 그래서 복음은 율법의 정신인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단지 막연한 사랑이 아닙니다. 대단히 구체적인 사랑입니다. 루가 복음 14장에 이런 말씀이 나오지요. 너희 가운데 누가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지면 안식일일지라도 바로 끌어내지 않겠느냐?” 안식일, 율법의 정신은 마치 법의 정신처럼 사람을 돕고 구하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하느님은 율법이란 정의의 테두리를 만들어놓고요. 신약의 시대에 와서 예수님을 통해 그 정의가 어떻게 현실로 가능해야 할 지를 보여주셨습니다. 바로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면서까지 바치는 사랑을요. 정의의 진정한 진가는 사람다운 세상을 만드는데 있습니다. 그 시스템의 구축되라고 하느님은 사람이 되어 오셨구요. 그 하느님의 정신이 현실의 세상에서 이뤄지라고, 우린 그분의 가르침을 지금도 배우고 있습니다. 다만 필요한 것은 내가 조금이나마 누리고 있는 기득권을 과연 남들에게도 양보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인데요.

  사랑하는 이문동 본당 교우 여러분

현재 어떤 사랑을 하고 있습니까? 사람을 돕는 여러 방법이 있습니다만, 제일 쉬운 방법이 뭔지 아십니까? 돈을 주면 됩니다. 돈을 주면, 내가 일부러 몸으로 힘들여 수고를 안해도 되고요. 받은 사람은 그 돈으로 뭐든 살 수 있으니 다 됐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우린 그 돈을 넘어서는 것을 만나고 개혁할 때, 주님이 말씀하신 참다운 사랑으로 나아갈 수 있는데요. 참다운 사랑이 가능토록 만드는 하느님의 사랑을 닮아갈 때 당신의 삶과 같아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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