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3주간 토요일.

2020. 9. 11. 오후 11:3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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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23주간 토요일. 1고린 10,14-22; 루카 6,43-49

  여러분은 어릴 때 공부 잘하셨습니까? 전 잘하지 못했습니다. 왜 공부를 못했나? 커서 살펴보니, 그동안 각 과목을 공부하는 방법은 배웠지만, 실상 공부를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 지에 대한, 자세는 배우지 못했기 때문인데요. 비록 어릴 때는 잘하지 못했지만, 신학교에 가서 진리를 탐구하려는 학자들의 서적을 보면서 공부 방법을 터득해 갔습니다. 제가 왜 공부 얘기를 꺼내는가 하면, 공부와 신앙은 비슷한 측면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우린 국어, 영어, 수학 등 각 과목 점수를 잘 받는 방법을 배우며 성적을 올리고, 큰 시험에서 좋은 점수 받아 합격하는 법만 배웠습니다. 그러다보니 원했던 목표를 이루면, 예전 책은 어떻게 합니까? 다시 보려고 들지 않았습니다. 목표를 이뤘으니까요. 이건 성경책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번 쓰윽 보고, 줄거리 알면 더 이상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불편한 장면이 나오면 더 안봅니다. 그 불편한 장면에 하느님의 속성이 들어있어도 말이지요. 다 안다고 여기니까요. 하지만 정말 잘 아십니까?

  신앙은 공부와 비슷한 측면이 많습니다. 마치 건강 관리를 하듯, 늘 꾸준해야 하고요. 다 알아도 기초가 중요하듯 성실히 반복해야 합니다. 하기 싫어도 금욕적으로 참을 줄도 알아야 하고요. 꼭 지켜야 할 의무사항도 있습니다. 게다가 오랫동안 자기 스스로를 시험하며 도()를 닦듯이 깨어있어야 합니다. 진정한 본질에 다가가려는 자세를 갖추어 갈 때 하느님께서 당신을 열어주시기 때문입니다. 공부는 진리에 대한 기도 자세입니다. 그럼 진리를 잘 섬기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바로 올바른 습관이 필요합니다. 현명한 규제를 받으며 습관이 몸에 익으면, 나의 본성을 잘 관리할 수 있고요. 기도를 할 때도 주님을 기다리는 것이 힘들지 않으면서 기다림을 통해 허락하시는 기쁨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어렵다라고만 여기는 이유는 신앙인의 삶이 수양하는 삶이라는 것을 잊기 때문입니다. 이건 마라톤처럼 일관되게 꾸준하게 페이스를 조절하며 가야합니다. 헌데 사람들은 지금 당장에 얻기를 원하지요. 그 조급함이 오히려 자기를 망치는데요.

 특히나 1독서에 나온 우상숭배를 하거나 복음에 실행하지 않는 이유는 하느님보다 불완전한 자기 자신을 더 신뢰하려 들었기 때문입니다. 내 기분, 내 느낌, 내 만족 등을요. 하지만  그 기분, 느낌이 10년 전, 20년 전에도 똑같았습니까? 어릴 때, 젊을 때 그대로입니까? 아니죠. 이미 세월과 함께 여러분은 변하고 있습니다. 변하는 것을 통제하려면, 변치 않는 것을 붙잡아야 하는데요. 교만과 자만을 버릴 때에야 비로소 만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댓글 1

  • 2020년 9월 17일 오전 6:04

    신부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