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9주일

2020. 8. 8. 오전 11: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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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19주일. 1열왕 19,9-13; 로마 9,1-5; 마태 14,22-33

 계속되는 비와 호우로 가정은 평안하신지요. 가뜩이나 여러 어려움이 겹친 시대를 살아가는 것만도 벅찬 현실입니다. 이런 시대를 살면서 드는 생각은 빨리, 얼른이라는 단어를 통하여 해결되길 바랍니다. 당연스럽게도 자극적이고도 효과가 빠르길 기대합니다. 사실 이런 생각이 교회에도 들어옵니다. 세상은 내 맘대로 안 돌아가도, 여기만큼은 기도한만큼 이뤄져야 하고요. 노력한 만큼 보상도 받고요. 얻고, 만족하면 그것이 믿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요. 하지만 어쩌지요? 여긴 그리 효과 빠른 곳이 아닙니다. 자극적인 곳도 아닙니다. 일단 예수님의 생애는 힘드셨던 삶이었지요. 저 뒤에 보이는 십자가처럼요.

 1독서에서 보듯 하느님은 강한 바람, 바위를 부수고, 지진, 같은 강인한 모습이 아닌, 조용하고 부드러운 평범해 보이는 속에서 찾을 수 있는 분으로 묘사됩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유대인은 예수님을 죽입니다. 2독서의 로마서 내용은 9장부터 11장까지가 바오로 자신과 같은 민족인, 유대인에 대한 안타까움이 실려있는 장면입니다. “믿음으로 찾지않고, 행위로 찾을 수 있다고  여겼기에(로마 9,32)" 예수님을 자신들의 편협함 속에 가두고 죽였던 것이지요. 사실 우리도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신앙보다는 움직이는 활동에 치중하니까요. 베드로처럼 처음에는 좋은 마음으로 시작합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지면 신앙이 옅어지고,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 생깁니다. 이른바 믿음도 자극성이라는 유행과 무관하지 않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그것이 잘 드러났지요. 물론 여기 계신 분들처럼 어떻게든 해보려는 분도 계시지만요. 이제 무엇이 필요할까요? 제대로 된 믿음의 삶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믿음은 주입식도 아니고요. 강제성이 있어서도 안됩니다. 모범답안은 있지만 내 상황과 맞아 떨어지는 답변을 스스로 내야 하는데요. 그래서 이런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지금 내가 안다고 여기는 것이 과연 참되기만 한 것일까? 당장의 행복함이 실은 얄팍한 행복이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까?’ 라고요. 많은 분들이 본능적으로 움직입니다. 이해득실을 따지는 계산이 빠릅니다. 이게 꼭 안 좋은 것만도 아닙니다. 그렇게라도 해왔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봅니다. 나는 과연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우리를 그럴듯하게 속이거나 불안하게 만들어 자기 말을 듣게 만드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어려운 문제입니다. 하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해왔던 경험을 통해 답을 찾도록 하겠습니다. 2가지의 예를 들겠습니다. 하나는 수영 배우기입니다. 처음 수영을 배울 때, 몸이 물에 뜨기 위하여 뭐라고 들으셨나요? 그렇지요. 머리를 물에 푹 담그라고요. 당장에는 아니? 숨도 못 쉬겠는데?’ 라는 반응이 나오지만, 머리를 더 깊이 잠글 때 신기하게도 몸이 물에 뜨면서 자세를 유지합니다. 언뜻 드는 생각과 다르게 말이죠. 두 번째는 어른되기입니다. 좀 세상의 맛을 알아가는 사춘기 시절, 어른들을 쉽게 폄하하고 이해하지 못한 적이 있으실 겁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부모가 되고 책임을 지면서 어른으로 산다는 게뭔지 그제서야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둘 다 해본 적 없고,시도한 적 없는 이에겐 납득이 안 가는 말처럼 들리겠지만 해보면서 터득되고, 배웠다고 해도, 그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열리기도 합니다. 원래 사람들은 그럴 듯한 가짜에 잘 속습니다. 하지만 참된 진리는 번드르르 하지 않고요. 눈에 잘 띄지도 않습니다. 무던하지만 속이 깊지요. 이렇듯 참된 것을 볼 줄 아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법입니다. 우리가 지금의 세상에 속해있기에 자극적이고, 효과 빠르고, 당장에 얻는 것을 원하지만 요새 아이들 말로 이라 일컫는 진짜배기는 유행을 타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시간을 들이고, 정성을 다하고, 집중하고 몰입해야 하겠습니다.

 이건 내 인생입니다. 소중한 내 삶을 가꾸는데 이런 시간과 정성을 못 들인다면 나는 그동안 너무 가벼운 것만을 좇았던 것은 아닌 지 살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을 잘 믿으려면 그동안 받은 가르침을 다시금 되새기고 건전한 합리적인 의문도 품으면서 바라본다면 우린 그분의 마음을 어느 새 헤아릴 것이고요. 신앙의 사정, 인생의 사정도 한층 더 나아져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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