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6주일

2020. 7. 18. 오후 3:3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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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16주일. 지혜 12,13-19; 로마 8,26-27; 마태 13,24-43

 여러분은 성부, 성자, 성령, 그리고 그분이 세우신 교회를 통하여 무엇을 얻어야 할까요? 솔직히 많은 교우분들이 지금의 편안함을 얻고자 신앙생활을 시작합니다. 또래의 사람들이 모여 있기에 친분도 가지고, 정보도 교환하고요. 건전한 이성교제도 가지며 연애 및 결혼도 합니다. 이것이 꼭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만, 내가 원하는 것이 이뤄지길 바래서 주님을 찾았던 적이 많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하지만 진정 무엇을 어떻게 얻어야 할까요?

 우리는 아담과 하와를 통해 원죄라는 걸 갖고 태어났습니다. 원죄는 다시 말해서 내가 하느님처럼 되고싶다는 금기의 선이었습니다. 사람이 이를 넘으면서 죽음이란 걸 맞아야 했고요. 나중에 받을 심판을 통해 내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지 결정됩니다. 그럼 여기서 예수님과 교회는 무엇을 도와줍니까? 우린 ‘roll-model인 예수님처럼 살 수 있다.’ 2천년간 역사를 통해 내려온 교회의 가르침을 통해 나 자신을 바로 세우고 잡으며 살 수 있다 는 어떤 때는 아프면서 통렬한, 어떤 때는 희망의 메시지를 배웁니다.

 지금의 세상은 수 많은 법과 규칙이 난무합니다. 하지만 우린 원래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느님이 이미 심어주신 양심이라는 판단 규칙만 잘 세우면 되니까요. 그렇지만 살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문제란, 양심이 변하는 사람이 생겨났고요. 또 양심이 변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람도 나타났습니다. 사람의 양심이 왜 변하는지 몇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일단 내가 좋아하는 사람끼리만 모이려 하고요. 내가 듣고 싶어하는 방송사의 뉴스만 보길 원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옳은 이야기라는 것도 알지만, 당장 듣기에 불편하면 그걸 하고 싶지 않은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런 성경구절이 있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8,32)” 진리, 참다운 목소리는 어떤 때는 불편합니다. 나하고 성향이 다를 때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달라야만 나를 살리기도 합니다. 우린 생각만큼 판단력이 좋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일단 높은자리에 있는 공직자들이라는 공무원도 개인적인 이익을 취하느라 정신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복음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내다가 밀까지 뽑을 지도 모른다.” 분별과 판단력을 키우려면 많은 시간과 훈련이 필요하고요. 그 시작은 하느님이 주신 양심을 잘 닦고 관리하는데 있습니다. 뭐가 밀인지, 가라지인지 처음에는 잘 모릅니다. 비슷해 보이니까요. 어떤 것이 하느님의 뜻인지 악마의 속삭임인지 잘 모릅니다. 처음에는 다 달콤하게 들리니까요. ~ 이제 우린 무언가 세워야 하는데요. 그 시작은 하느님의 정신으로 돌아가는데있습니다.

 1독서는 당신의 힘은 정의의 원천입니다.” 는 정의의 하느님과 지은 죄에 대하여 회개할 기회를 주신다.” 는 사랑의 하느님을 보여줍니다. 그분은 정의와 사랑을 다 갖고 계십니다. 어느 한 쪽만 원할 때 우린 편협해집니다 이런 하느님의 정신이 2독서는 성령께서는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처럼 날카로운 분별력이 더 풍요롭고 풍성해질 수 있도록 성령의 도움을 받아 양육되고 성장될 수 있습니다.

 신앙은 공부와 비슷한 측면이 많습니다. 늘 배워야 하고요. 늘 훈련해야 하고요. 늘 새로움에 대처해야 합니다. 헌데 현실은 자기 자신을 바라보지 못하고 남의 인생에 대해서 지적을 해댑니다.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어떤 제자가 묻습니다. 예수님이 사랑하던 제자가 나중에 어떻게 되겠느냐?’ 고요. 그러자 예수님은 이렇게 답하십니다.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있기를 바란다고 할 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남이 어찌 사는가? 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 내 인생이 잘 가고 있는지 보십시오. 우리가 이미 아는 공자의 사상인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시작은 자기를 잘 살피고, 다스리는데 있습니다. 하느님의 가르침을 통해 나 자신을 잘 다스리고 관리해 나갈 때, 더 나은 분별력과 판단력이 생겨날 것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다른 분들보다 더 잘 살고 싶어 여기 오신 분들입니다. 잘 살고픈 그 관심의 시작이 여러분을 성장 시켜 줄 것이고요. 그 관심이 제대로 살도록 붙잡아 줄 것입니다. 잘 해나가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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