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2주일. 예레 20,10-13; 로마 5,12-15; 마태 10,26-33
하나의 질문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긍정적이십니까?' 여기서 '긍정' 이란 단어의 뜻을 알고 가야겠습니다. 긍정은 단순히 무언가를 좋게 보고, 희망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오히려 '낙관적' 이란 표현이 맞겠지요. 그래서 찾아봤습니다. 국어사전에는 "어떤 생각이나 사실 따위를 그러하다고 옳다고 인정함"... 철학사전에는 "사물에 대하여 그 존재방식을 있는 그대로 승인하는 것" 이랍니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승인하는 것. 어쩌면 솔직히 불편합니다. 세상이 내가 바라고 원한데로 움직여지길 바라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린 경험하면서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실상 기도하면서도 주님의 메시지가 뚝뚝 떨어지지도 않고요. 오늘 독서와 복음처럼 '두려운 것들' 이 도처에 넘쳐납니다. 자~그래서 봤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긍정적이십니까? 이 현실을 받아들일만한 그릇이 되어있으십니까?'
저도 이 생활을 하면서 더 나은 신앙인이 되려고 몸부림치면서 알게된 것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내가 가진 약점과 불완전함과 화해하면서 살아가는가? 아니면 못 본체 하면서, 보고싶은 면만 바라보며 살아가는가?' 라는 질문입니다. 즉 현실을 긍정의 눈으로 바라보는가? 아니면 원하는 것만 추구하면서 현실과 동떨어져 살아가려는가? 는 뜻인데요. 우리의 시작은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하는데요.
오늘 복음만 보더라도 "너희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마라" 하셨지만 솔직히 우린 여전히 두렵습니다. 딴 사람들의 반응이 두렵고요. 그래서 눈치를 보고요. 저도 여러분을 처음 만났기에 긴장됩니다. 1독서처럼 "군중이 수근대는 소리가 들립니다. 가까운 친구들마저 모두 제가 쓰러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우린 이미 압니다. 왜요? 당해봤으니까요. 그래서 여기서 이겨나가려고 버텨내고 싶어서 오늘도 여기 오신 것이 아닙니까?
성직자 수도자가 서품을 받고 서원을 하기 전에 하는 프로그램중에 30일 피정이란 것이 있습니다. 하루에 대여섯개씩의 묵상꺼리를 주면서 침묵 중에 기도하고, 심지어 식사할 때도 남들과 말하지 않는 피정입니다. 그러면서 하느님을 알고 예수님의 전 생애를 묵상하는데요. 그 시작은 시편 139편의 '주님, 당신께서는 저의 모든 것을 아십니다' 로 시작됩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러면서 우리도 하느님이어떤 분인지를 알아가고 이해합니다. 당신에 대해 알아가다보면, 서로를 더 잘 알면, 상대방에 대한 예측이 가능하고요. 그에대한 대처와 처신이 가능하고요. 당연히 하느님의 섭리와 뜻하심이 뭔지를 알고요. 내가 해왔던 방식이나 선택보다 더 나은 선하심이 어떤 것인지 헤아려 갈 수 있어서 더 나은 판단과 결정이 가능하고요. 당장의 오해받음과 손가락질이 그다지 무섭지 않다는 용기도 생깁니다. 그러면서 2독서에 나온데로 "하느님의 은총과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은혜로운 선물" 을 이미 받았음을 다시 인식할 수 있고요. 하느님이 주신 '나' 라는 사람의 자존감도 회복되게 됩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대부분 사람들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현실속에서만 헤매지만 우린 이미 자신안에 이미 오신 하느님을 발견하며 힘을 얻을 수 있으니 얼마나 든든하고 고마운 일입니까? 우린 하느님을 알아갈수록 제대로된 답에 다다르게 됩니다. 당장의 어려움에 굴복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우리가 이미 받은 선물을 되새기며 잘 이겨 나가십시오. 우린 하느님을 알기에 두려워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대처해가며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