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현 후 수요일

2020. 1. 8. 오전 11: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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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현 후 수요일

  ‘하나를 제대로 알고 파악하려면 뭐가 필요할까요?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갈 길을 아는 이는 길을 잃지 않는다라고요. 저와 여러분이 가려는 하느님 나라의 초행길에는 다행히도 많은 표지판이 달려 있습니다. 표지판은 지시실현을 알려줍니다. 아직 목표치에 다다르지 않았지만 이리로 가면 나온다는 지시와 이리로 정말 갔을 때 목표에 다다르는’ ‘실현입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많은 분들이 하느님의 보고 싶은 면만 보려다가 정작 길을 잃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아주 오랫동안 열심히 믿었다는데 열매는 맺지 못하는, 안타까운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처럼 사랑만 보려다가 사랑을 통해 볼 수 있는 경우를 놓치는 경우입니다. 그래서 큰 두 가지 줄기를 말씀드립니다. 그건 정의와 사랑입니다.

  구약을 통해 하느님의 정의를 많이 배우고요. 신약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만납니다. 정의란, 십계명, 율법 등 지혜서, 집회서, 잠언 등 금언집을 통해 해야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의 구분을 세우고요. 사랑을 통해 어긋났던 것을 회복시키고 법에 없는 것을 초월하여 감동의 상태로 이끕니다. 여기서 이런 것을 알게 됩니다. ‘정의만 있으면 사람이 딱딱해지고요. 사랑만 있으면 조절이 쉽지 않습니다.’

  복음과 독서에는 공통적인 말씀이 나옵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나다, 두려워 하지마라 그럼 두려움은 왜 생깁니까? 가야할 방향을 잃었을 때 생깁니다. 여기로 가는 것이 맞는가?아닌가? 분별하지 못할 때 생깁니다. 여기선 사랑을 얘기하지만 실은 분별에 필요한 정의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 둘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서로를 오가면서 우리를 조절하는데 필요한 줄기를 이룹니다. 복음의 장면은 5천명을 먹이신 이후의 장면입니다. 배불리 먹은 탓에 배만 부르면 된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물 위를 걸으시는 기적을 통해 예수님은 우리의 소원을 이뤄주는 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걸 넘어서는 차원까지 보여주시며 우리가 가야할 방향을 잡아주십니다. 그건 바로 하느님의 마음을 닮을 때, 여러 조건과 한계를 이겨나갈 수 있는 가르침입니다. 우리가 만나는 하느님의 가르침을 단순하게만 여기지 마십시오. 그러다다 갈 길을 잃고맙니다. 충분히 헤아리며 가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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