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1주일 가해.

2019. 11. 30. 오후 11:5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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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1주일 가해. 이사 2,1-5; 로마 13,11-14; 마태 24,37-44

  교회 전례력으로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인사 드리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옆의 분하고도 인사하셔야죠. 교회 방식의 새해는 이처럼 당일날, 그날이 돼서야 챙기면서 기쁜 것이 아니라, 기쁨을 기다리고 몸과 마음의 준비를 가지런히 정리하면서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기쁨을 맞이할 준비를 하셨습니까? 과연 여러분은 무엇을 기다리십니까? 누구를 기다리십니까?

  어쩌면 이런 대답을 하실지 모릅니다. 하늘 아래 새로울 것이 뭐 있겠어? 현실이 늘상 똑같지..’ 그래요 그렇게 여길 수 있습니다. 다 겪어봤다는 듯이, 다 안다는 듯이..’ 우리가 경험을 해봤으니까요. 여기서 이런 것을 인정해야 하겠습니다. 나는 솔직히 현실이라는 삶의 노예였다. 그저 주어진 데로만, 시키는 데로만 해왔다. 기쁘지 않았다. 기대하지도 않았다. 어째서? 나의 지금의 위치가 그러하니까..’ 이 대답이 만족스럽습니까?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할까요?

  그동안 교회를 통해 받은 가르침 중에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하느님은 사람에게 약속을 하시고, 그 약속을 지키시는 하느님 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미 읽은 구약성경이 그러했지요. 수많은 예언자들의 입을 통해 그분의 오심을 말해 왔었고요. 신약의 복음을 통해 그분의 활동을 현실로 드러나면서 그분의 제자들이 그분을 따라 살았고요. 이제 새해를 맞이한 우리가 바톤을 이어받고 있는데요. 그 바톤을 받은 우리들 무얼 해야 할까요? 짧은 내 인생을 통해 만나는 말씀과 성체를 모시면서 기쁨의 삶을 살고 계십니까? 희망이 차오르십니까? 더 잘 살아내고픈 갈증과 간절함이 있습니까? 대림을 맞아 준비를 위해 판공성사를 봅니다. 예전에는 자기의 죄를 담담하게 인정하고 고백했습니다. 하지만 요사이는 다릅니다. 고백을 이런 스타일로 합니다. 제가 누구, 누구 때문에 이러저러한 일이 벌어져서 제 마음이 너무나 아픕니다.’ 자기 죄를 얘기하는 시간을 자꾸 남을 끌어들입니다. 어디서 본 풍경이지 않습니까? 창세기에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죄를 짓자 하느님이 묻지요. 어찌하여 이런 일이 일어났는냐? 하시니 대답합니다. 저와 함께 살라고 명하신 여자가 나무 열매를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 어떻게든 자기 죄를 희석하여 물타기 하면서 탓하고 변명꺼리를 찾는 자세는,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는 인간의 본능인데요. 고해를 통해 자기 죄를 씻는 참회를 통해 얻는 사랑과 용서보다는, 죄를 더 쌓는 모습이 연출 되는데요. 그분은 늘 계획하고, 일하고, 움직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갑자기 어떤 방식으로 오실 지 모르는 주님을 기다리며 정돈된 자세로 맞이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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