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0주간 수요일
여러분은 주님께 부르심을 받으신 분들입니다. 그런데 어디로 어떻게 부르시는지 아시는지요? 물론 거울을 보듯 명확히 보진 못해도 어렴풋하게나마 아는 것이 있지요. 독서에 나오듯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압니다.”처럼 공동선, 즉 공동이 바라는 선(善)함을 만나야하고 그러할 때, 사는 이유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런 선함을 모두가 바라진 않습니다. 왜냐구요? 이른바 생각은 있고 마음은 있는데, 현실적으로 모두가 하려고 들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자면, 남들과 사이좋게 잘 지내고, 부모님 봉양 잘하고, 사랑을 나누며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입으로는 말하지만 실제로는 남을 험담하고 있고요. 부모님을 피하고, 대화를 해야 할 상황을 시도하지 않습니다. 제가 직무상으로 동작 경찰서를 한 달에 한 번 가서 미사와 성사를 해주는데요. 어제 우연찮케 그곳 여성, 청소년계를 맡은 경찰이 와서 절절한 사연을 전합니다. ‘우리도 감정노동자에요. 매번 소년원에 갈 법할 아이들, 학교폭력,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사람을 만나며 본인도 모르게 진(津)이 빠져요’ 사실적인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그들이 선택한 직업이라 해도 실상 우리의 가족들은 우리 스스로 먼저 지켜냈어야 했는데요. 헌데 당사자인 우리가 먼저 하려들지 않고 관심을 꺼버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금보다 더 못한 사회가 되어가겠지요.
복음에 나옵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구원으로 가는 길은 누구나 바라지만 그것이 가능하려면 어떤 관문을 통과해야 할까요? 쉽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손에 흙을 묻혀야 하고요. 땀을 흘려야 하고, 자존심도 상하고, 남이 저지른 것 내가 대신 치우기도 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잘못한 거라면 당연하겠지만 책임이 높은 이에게는 더 많은 일이 부과되지요. 내 밑에있던 사람이 저지른 것마저 다 뒤집어쓰고 가야하니까요. 하지만 어디 사람들이 다 그걸 받아들인답니까? 나이가 많아도, 높은 자리에 있다고 이걸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손에 피 묻히는 것은 피하고 싶으니까요. 여러분은 지금 어떤 문을 통과하고 계십니까? 달갑지 않을수록, 피하고 싶을수록 하느님과 여러분은 더 가까울 것입니다. 이를 잘 받아들이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