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9주간 화요일

2019. 10. 22. 오후 4:4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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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29주간 화요일

  제가 신부로 살면서 싸워나가야 할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신부는 평탄한 삶이면 안됩니다. 그런 안주(安住)함은 오히려 영적인 메마름으로 이어집니다. 계속 현실과 항거하며 가야만 주님의 복음을 전하며 찾을 수 있는데요. 이것을 본당에 한정짓자면 그 싸움은 신자들을 향한 질책과 나무라는 형태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본 신자들은 신부님이 무섭다. 까칠하다등의 반응을 보이지요. 하지만 실상 많은 신부님들의 싸움은 이것이었습니다. 신자들 안에 있는 이기주의, 욕심, 비복음적인 자세 와의 싸움이었습니다.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라 그 신자 안에 있는 영혼의 불완전함, 주님을 멀리하려는 자세에 대한 꾸짖음과 충고였는데 실상 많은 분들은 나를 싫어하시나보다라고 여기지요. 하지만 이 둘은 전혀 다른데요. 그래서 우린 자신의 상태를 잘 봐야 합니다.

  독서 내용이 그것이었습니다. 모든 문제의 시작은 한 사람을 통하여 시작되었습니다. 그 시작은 아담이었죠. 그는 하느님과 닮았으나 우리처럼 불안정했고, 욕심에 기울어집니다. 그로인해 죄, 범죄, 죽음이 들어오지요. 그 욕심은 한편으로 유혹이기도 했지만 그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결과이기도 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자신을 객관적이다라는 생각을 하지만 실은 꼭 그렇지 않지요.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중용(中庸)’이 필요합니다. 중용은 화살로 과녁의 중심을 맞췄을 때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상태입니다. 이게 되려면 뭐가 필요할까요? ‘냉철한 지성이 요구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얼마나 냉철한 시각으로 보십니까? 대부분은 몇 번 해보다가 관둡니다. 힘들다면서, 그러면서 당장 느끼는 기분대로 움직이지요. 그게 편하니까요. 하지만 그 편함이 오히려 자신의 눈을 멀게 하고 죽이게 만드는 것이라면 어쩌실 것인가요? 그래서 복음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놓고 있어라.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있는 종들 이들은 늘 준비합니다. 자신을 관리하고, 나의 주인인 주님이 뭘 원하시는지 연구하고 자신의 영혼을 점검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100% 완전할 수는 없습니다. 그도 불완전한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주님은 그런 그에게 당신을 보여주시고 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인 은총을 주시지요. 그렇다면 불완전이 불완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관리하는 이에게 주어지는 선물인데요. 그것을 얻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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