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 기념일. 하까이 1,15-2,9;루카 9,18-22
교회가 커지고, 수도회도 커지다보니 여러 시스템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한편으로 시스템, 환경, 이런 것들이 누리고픈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어주고요. 잘 돌아가게끔 해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것만 중시하다보면 무엇이 문제가 될까요? 작은 것을 볼 줄 모르지요. 그리고 누리는 것을 어떻게든 지키려고 듭니다. 법을 고치거나 무시하면서 이런 시도를 하지요. 요사이 벌어진 개신교의 세습 문제는 마치 재벌들의 세습과도 흡사한데요. 여기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가난하게 살 줄 아는 정신입니다. 그래야 신앙의 참된 정체를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잘 아는 ‘빈첸시오 드 폴’ 사제 기념일입니다. ‘드 폴’ 이란 이름은 그가 원래 프랑스 사람이기 이제는 이렇게 부르고 있고요. 원래는 우리가 아는 ‘빈첸시오 아 바오로’ 는 라틴식 표기입니다. 그의 생애는 3가지의 의의가 있습니다. 첫째는 활동가입니다. 그는 미리 계획을 세우지 않고 일을 했답니다. 즉 현실감을 가지고, 그때마다 필요한 부응책을 폈답니다. 즉흥적으로 볼 수도 있지만 여기엔 제도보다 ‘사람’을 더 중시한 자세였습니다. 둘째는 신학적인 지식이 많아도, 헌신적인 생활과 기도가 없다면 성직자 수도자라도 문가 생긴다고 말하면서, 그가 설립한 애덕의 수녀회는 수녀복을 입지 않는 사복수녀회로서 하루 종일 병원과 가난한 이들을 위해 봉사합니다. 셋째는 그의 영성은 활동 안에서 하느님과 일치하는 길이었습니다. 진정한 신앙은 복음 생활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데 있으며, 특히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의 실천으로 드러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당연히 이런 실천을 하면 자기 집착을 버리게 되고요. 자기 생각대로의 실천이 아닌, 하느님의 지시를 기다리면서 실천하기에 실로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결과를 맞이한다고 그는 말합니다.
복음에서 주님은 “군중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라는 질문을 던지십니다. 그럼 우리도 그 대답을 해야 하는데요. 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가 이집트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맺은 언약대로 나의 영이 너희 가운데 머무를 터이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마라” 솔직히 말은 이렇게 들었지만, 두려웠지요. 왜 안 두렵겠습니까? 되는 것 하나 없는 상태인데요. 하지만 우린 맨주먹에서 시작했던 과거가 있습니다. 일본의 침략과 전쟁, 고통과 후유증, 산업화로 인한 피해 속에서도 잃지 않았던 것은 바로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원했습니다. 물론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가난 속에서, 실천 속에서 약동적인 삶이 되어가고 있는데요. 주님의 모습은 자칫 약해보입니다. 당장 이뤄지는 것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렇기만 할까요? 진정한 것을 움켜쥐려면 놓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런 가난 속에서 참된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